아이돌을 육성하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안준영 PD가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피해 연습생들을 억울하게 탈락시킨 사실을 밝히는 게 진정한 피해 배상의 출발”이라며 피해 연습생 명단을 직접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8일 업무방해·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안씨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역 2년을 선고하고 3699만여원을 추징하라고 명령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용범 CP(총괄 프로듀서)는 징역 1년8개월, 보조 PD 이모씨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이들을 접대한 기획사 임직원 5명에게는 1심의 벌금형보다 무거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안씨 등 제작진은 ‘프로듀스101’ 시즌 1∼4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들의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해 특정 후보자에게 혜택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에게서 수천만원 상당의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혐의(배임수재)도 있다.
재판부는 “순위조작으로 탈락한 피해 연습생들은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살 수밖에 없었고, 국민 프로듀서로 자부심을 갖던 시청자들은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결과는 참담하게도 모두가 패자가 됐다”며 안씨 등의 혐의가 무겁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피해 연습생이 누구인지 밝혀져야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가능하다”며 순위 조작으로 탈락한 연습생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법정에서 공개된 피해 연습생은 시즌1의 김수현·서혜린, 시즌2의 성현우·강동호, 시즌3의 이가은·한초원, 시즌4의 앙자르디 디모데·김국헌·이진우·구정모·이진혁·금동현 등 12명이다.
다만 재판부는 순위가 유리하게 조작된 연습생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 역시 자신의 순위 조작 사실을 몰랐고, 공개될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단죄하는 것이지 최선을 다해 젊음을 불태운 연습생을 단죄하는 재판이 아니다”며 “또 다른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문자투표 참여자 박모씨가 안씨 등 제작진 3명에게 “문자투표 비용 100원을 배상해달라”고 신청한 것도 인용됐다. 재판부는 “배상 신청액보다 (배상명령)신청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지만, 이 사건이 시청자를 속인 사기에 해당한다는 점을 선언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