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만 있었다면…” 스쿨존 트럭 사고가 더 안타까운 이유

입력 2020-11-18 05:08 수정 2020-11-18 09:57

광주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인 이른바 스쿨존에서 트럭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일가족을 치어 2세 여아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또 발생했다. 사고 현장에선 이미 한 차례 큰 사고가 발생해 주민들이 신호등 설치를 요구해 왔지만 인근에 신호등이 있다는 이유로 횡단보도만 설치됐다는 점에서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를 낸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치사상 등)로 50대 운전자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17일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8시45분쯤 북구 운암동 한 아파트단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8.5t 트럭을 운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엄마와 자녀 3명을 들이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고로 유모차에 타고 있던 만 2세 여아가 숨졌고 여아의 언니와 30대 어머니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이다. 유모차에 둘째 누나와 함께 타고 있던 막내아들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이들 가족은 아파트단지 사이에 난 4차로를 건너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길에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차량 정체로 횡단보도 앞에서 비상등을 켠 채 정차하다 트럭 바로 앞에 있던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출발하면서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사고 직전 횡단보도를 건너던 가족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에서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횡단보도를 향했다. 옆에 큰딸로 보이는 아이가 유모차를 붙잡고 신난 듯 춤을 추며 함께 걸어온다. 횡단보도를 향하던 엄마는 쌩쌩 달리는 차들을 살피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횡단보도 앞에 도착한 엄마는 바로 앞에 트럭이 멈춰 신호를 기다리자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대편 차량이 멈추지 않자 중간에 멈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그 사이 신호가 바뀌었고 트럭은 출발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운전석이 높아 어머니와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음주운전이나 과속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를 낸 만큼 사고 차량 운전자에 대해 ‘민식이법’을 적용, 입건하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9세 어린이 김민식군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이 도로는 주변에 어린이집이 많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정작 신호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에도 7살 어린이가 길을 건너다 차량에 치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해 주민들이 횡단보도 설치와 신호등 신설, 주정차 위반 단속카메라 설치 등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인근 교차로에 신호등이 있다는 이유로 횡단보도만 설치됐다.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선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