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허수경’ 후 12년…‘비혼모 사유리’ 불법인 한국

입력 2020-11-18 00:25 수정 2020-11-18 10:43

방송인 사유리(41)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해 자발적 ‘비혼(非婚)모’가 된 소식에 한국 사회에서 관련 논의에 불이 붙었다. 특히 그가 “한국에서는 모든 게 불법이었다”고 밝히며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은 사실을 놓고 국내 상황이 어떤지 관심이 높아졌다. 12년 전인 2007년 방송인 허수경씨가 공개적으로 정자를 기증받고 이듬해 출산에 성공하며 화제가 됐던 일이 재조명되며 시대를 역행한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현실을 반영하는 법·제도 재정비가 필요한 때라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

사유리의 비혼 출산 소식이 알려진 17일 여성들이 많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역맘까페 등에서는 ‘사유리 용기 있는 선택이 대단하다’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응원한다’ 등의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그의 선택을 응원하는 이들은 대체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준비한 엄마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남편의 무정자증 등으로 인해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갖는 난임 부부 사례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은 풍경이 된 것도 ‘비혼모 사유리’를 향한 응원의 이유였다.

2007년 공개적으로 정자 기증을 받았던 방송인 허수경씨 사례도 회자됐다. 사유리가 한국에서 불법인 탓에 일본으로 가 정자를 기증받았다고 하는데 12년 전 허수경은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것이다. 당시 허씨는 비혼 상태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2008년 1월 시험관 아기를 출산했다. 그는 당시 방송을 통해 그 과정과 비혼모의 삶을 공개하기도 했다.

허씨 사례를 기억하는 이들은 시간이 더 흐른 지금 사유리가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야 했는지 의아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허씨가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관련 규정이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 생명윤리법에는 난자·정자 채취 등에 관한 규정이 아예 없었다. 이후 생명윤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난임 치료 등이 등장하면서 생명윤리법과 모자보건법이 강화됐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지금도 생명윤리법상에 미혼 여성의 시술은 불가하다는 취지의 규정은 없다. 금전을 목적으로 한 거래나 특정 성별의 아이를 갖기 위한 시술, 미성년자에 대한 시술 등만 금지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불법’인 근거를 찾자면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인공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한 ‘난임 부부’ 기준일 것이다. 난임 부부는 법적으로 사실혼 혹은 법률혼 관계에 있는 부부, 1년 동안 자연상태에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로 정의돼 있다. 이를 근거로 마련된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은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는 것이 ‘불법’이라고 규정할 만한 법적 근거도 사실상 명확지는 않은 셈이다. ‘난임 부부’를 위한 치료적 접근 외에 아이를 낳겠다는 권리에 대한 인식도, 관련 정책과 제도도 여전히 백지상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비혼과 만혼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법률적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높다. ‘낳지 않을 권리’(낙태)와 함께 ‘낳을 권리’에 대한 고민도 시작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영국, 스웨덴, 미국 일부 주에선 배우자 없는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어날 아이의 행복권 등을 위해서라도 오히려 명확한 심사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산부인과 의사는 “무작정 허용하자 말자를 다툴 일은 아니다”면서 “우선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런 요구가 얼마나 있는지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일본 경우처럼 윤리심사 절차를 명확히 마련해 합법적 경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