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17일 김해신공항 타당성 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해신공항안은 안전, 시설 운영, 수여, 환경, 소음 분야 등 상당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하고 미래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 총리실 검장위…“김해신공항안 문제있다”
검증위는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할 수는 있으나, 미래 예상되는 제반 변화를 수용해 대비하는 기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검증위는 또 안전성 문제와 함께 공항 시설 확장을 위해선 ‘부산시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제처 유권해석에 따라 김해신공항안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김해신공항 계획 수립 시 경운산, 오봉산, 임호산 등 진입표면 높이 이상의 장애물에 대해서는 절취를 전제해야 하나, 이를 고려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법 취지에 위배되는 오류가 있었다고 검증위는 봤다.
이에 부산시가 김해신공항 대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강력히 주장하는 만큼 가덕도 신공항에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가덕 신공항 건설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수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번 총리실 검증 결과 발표는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 적절한지를 본 것일 뿐, 가덕 신공항으로 추진하겠다는 발표가 아니다. 즉, 동남권신공항을 가덕도에 건설하겠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김해신공항을 결정하고 추진했던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추진의 전면에 나서기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김해신공항안을 두고 국토부와 날 선 공방을 벌였던 부산시가 어떻게 국토부 협력을 끌어낼지 주목된다.
■ 대구·경북 강력 반발
인근 광역지자체 여론도 가덕신공항을 모두 찬성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신공항 예정지로 거론됐던 밀양시와 경남 일부, 울산 여론도 김해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 군위와 의성에 통합 신공항을 건설하는 대구·경북의 반대 여론은 그동안의 강도에 비해 다소 수위는 낮아졌지만, 반발 기조는 그대로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날 공동입장문을 발표하고 “김해신공항 건설사업은 반드시 추진돼야 하고, 모든 절차는 영남권 5개 시도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두 단체장은 이어 “이번 검증 결과에서 제기된 것처럼 기술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해 추진하는 게 당연하다”며 “오로지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목적으로 동남권신공항을 이용하려 한다면 영남권을 또다시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국가정책을 뒤집을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수 있다”며 “국민과 한 약속을 송두리째 깔아뭉개는 정부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권영진 대구시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동안 정부가 입만 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김해신공항이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가덕도로 옮기겠다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구경북은 가덕도신공항에 합의해 준 적이 없다”고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대구상공회의소도 이날 지역 경제인들의 심정을 담은 입장문을 내고 “당초 대구경북이 양보해 밀양을 후보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결정했던 김해신공항 확장안을 정부 스스로 뒤집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도 성명을 내고 “국책사업을 뒤엎는 선례를 남겨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 주장이 현실화 되는 것 같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신공항 카드는 선거용?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이 선거 때면 어김없이 거론되면서 ‘신공항은 선거용’이란 공식이 나올 정도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표심과 맞물려 자칫 새로운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동남권 관문공항의 입지가 김해신공항 확장안으로 결정 난 것은 지난 2016년 6월이다. 국토교통부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에 용역을 맡겨 검토한 끝에 김해공항에 활주로 1본을 추가 건설하는 것으로 결론 냈고, 충돌 양상을 보였던 자치단체들이 합의안도 도출했다.
그러나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비롯해 울산, 경남 광역단체장들이 김해공항 확장안에 문제를 제기하며 재검토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논란에 다시 불붙었다. 이후 이들은 김해신공항 건설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검증을 요구하며 신공항 건설에 나서려는 국토부와 대립했다. 이 대립을 해소하고자 국무총리실로 공을 넘겨, 이날 동남권신공항 건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6년 김해공항 확장 안 결정 이후 5년 만이다.
야당은 이에 대해 정부·여당이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고려해 또다시 선거용으로 ‘신공항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부산진갑)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5석만 주면 가덕도 공항 만들겠다고 했고, 김해신공항 검증위를 만든 게 이낙연 통합민주당 대표가 국무총리로 있을 때”라며 “총리 시절엔 뒷짐 지던 그가 대통령 후보가 돼 보겠다고 신공항을 들먹거리고, 대통령 공약도 아니라던 정세균 총리까지 신공항 (문제)를 꺼내고 있다”고 했다. 서 의원은 “이제 이른바 ‘신공항 정치’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도 했다.
■ 부산시는 환영
부산시와 부산 상공계, 시민단체 등은 검증위의 이번 결정을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우선 변성완 부산시 권한대행은 “총리실 검증위의 결과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역사적 결정으로, 부산시민의 염원과 역량이 결집한 결과”라며 “머리 숙여 감사하다”고 말했다.
허용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국토부의 무리한 김해공항 확장안 강행에 큰 우려가 있었지만, 정부가 사실상 김해공항 확장안 백지화라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성과는 지역 경제계와 지방자치단체, 시민 모두가 합심하여 이뤄낸 값진 결과”라고 했다.
박영강 교수는 “부·울·경 여망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면서 “정부가 서둘러 김해공항 백지화 선언을 한 뒤 부·울·경 단체장에게 가덕신공항 후보지에 대한 합의 요청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가덕도가 신공항 최적지”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17일 “안전하고 24시간 운항 가능한 동남권 신공항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가덕도가 최적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부·울·경(부산·울산·경남)에서 여러 차례 강조해온 대로 김해공항 확장안은 안전성뿐만 아니라 소음, 확장성 등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이다”며 “이제는 안전하면서도 24시간 운항 가능한 동남권 신공항 대안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항·항만·철도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대륙의 시작점이자 해양으로 나가는 출발점인 동남권은 동북아 물류의 허브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다”면서 “24시간 운항이 가능하면서 부산신항과 바로 연계할 수 있는 공항은 현재로서는 가덕도가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가덕도를 언급했다.
변성완 권한대행은 ‘가덕신공항 건설’ 추진을 위한 후속 조치를 대외적으로 공표했다. 그는 “가덕 신공항은 부산의 재도약은 물론이고 동남권 메가시티의 출발점”이라며 “앞으로 동남권 관문 공항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국가사업으로 지정된 2030 엑스포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어 “신공항 수요는 충분히 검토된 만큼 중복 검토는 불필요, 무의미하다”면서 “가덕 신공항 건설에 앞서 진행하는 사전타당성 조사, 예비타당성 조사 등 필수 절차에 드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