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띄웠던 신공항, 돌고돌아 18년 만에 여권 뜻대로

입력 2020-11-17 18:17 수정 2020-11-17 20:34
부산 강서구 가덕도의 모습. 뉴시스

지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출발했던 ‘남부권 신공항’이 2016년 김해신공항을 거쳐 다시 가덕도 신공항으로 유턴하게 됐다. 4년 전 박근혜정부의 결정도, 문재인정부의 재검토도 ‘PK(부산·경남) 민심잡기’라는 정치 논리에 따라 결론 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정부에서 결정한 김해신공항 안을 뒤집으려는 움직임은 문재인정부 들어와 2018년 여권의 지방선거 압승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민주당 소속의 부산·울산·경남 지자체장이 앞장서서 가덕도 신공항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친노무현계 부산 지역 의원들은 ‘가덕도 신공항은 노 대통령의 유업’이라면서 국토교통부 등 정부 측을 설득했다. 여권의 집요한 작업과 내년 4월 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의식한 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가덕도 신공항으로 결정이 된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2002년 김대중정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해공항의 포화 상태에 대비해 공항 확장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자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산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남부권 신공항 문제를 공식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신공항을 둘러싼 지역 갈등과 각종 논란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명박정부는 2009년 경남 밀양과 가덕도를 신공항 후보지로 선정하며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2011년 3월 이명박정부는 타당성 조사 결과 “밀양과 가덕도 모두 경제성이 없다”며 신공항 백지화를 선언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해온 정책을 경제성을 이유로 뒤엎은 것이다.


2012년 18대 대선이 다가오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다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꺼내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 후 밀양과 가덕도를 중심으로 신공항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자 19억원의 비용을 들여 프랑스 전문기관에 용역연구를 맡겼다. 2016년 6월엔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에 활주로 하나를 더 놓겠다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했다. 공약 파기 논란이 일자 “사실상 새 공항 건설”이라며 ‘김해신공항’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20대 국회 당시 더불어민주당 부산지역 의원들이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회' 입지선정 용역결과 발표 이후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내 진상조사단을 꾸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부산을 찾아 ‘동남권 관문 공항과 공항복합도시 건설’을 공약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도 김해공항이 아닌 가덕도 신공항 건설 재추진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민주당에선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방선거 압승이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덕분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후 오 전 시장과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는 신공항 건설을 위한 부산·울산·경남 TF를 꾸려 가덕도 신공항에 박차를 가했다.

친노 성향의 박재호 전재수 의원 등 부산 지역 의원들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문 대통령과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의원을 수차례 찾아가 설득 작업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김해 신공항 확장안을 검증대에 올릴 것을 총리실에 지시했고, 지난해 12월 총리실 산하에 검증위가 꾸려졌다. 검증위는 안전성 문제와 함께 ‘공항 시설 확장을 위해선 부산시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법제처 유권해석을 인정했다. 김해신공항 안에 절차적 흠결이 있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김해신공항 백지화를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경남 김해을이 지역구인 김정호 의원은 “18년 동안 해묵은 숙제를 오늘 문재인정부 검증위원회를 통해 매듭을 짓는다”며 “(김해신공항 백지화는)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