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연경 상벌위 회부까지 제안했던 총재 특보님

입력 2020-11-17 16:35 수정 2020-11-17 18:23
흥국생명 김연경이 지난 1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GS칼텍스와의 경기 중 경기가 풀리지 않자 코트 뒷편을 향해 볼을 쳐내고 있다. 연합뉴스

조영호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 특별보좌역이 김연경(흥국생명) 관련 논란 이후 회의를 소집해 ‘상벌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상벌위는 통상 중죄를 범했거나 경기 중 퇴장 이상의 징계를 받은 선수의 처벌을 논의하는 기구다. 한 선수의 감정 표출 행위에 대해 상벌위까지 언급된 것은 이례적이다. 논란 대상이 스타플레이어인 김연경이어서 이런 의견이 나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연경은 지난 11일 GS칼텍스와 경기 마지막 5세트 14-14 상황에서 공격이 상대 블로킹에 막히자 네트를 잡아끌며 분노를 표출했다. 경기 주심이었던 강주희 심판은 이에 대한 제재를 하지 않았다. 김연경이 이미 바닥에 공을 내리쳐 구두경고를 받았고,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항의하다 옐로카드를 받은 상황에서 김연경의 행위를 처벌하려면 규정상 레드카드를 주거나 퇴장시키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강 심판은 김연경의 행위가 ‘상대를 모독하는 행위’가 있었을 때 주는 퇴장 감은 아니라 판단했고, 레드카드를 줄 경우 GS칼텍스가 1점을 더 얻어 경기가 심판에 의해 종료되기에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해 김연경을 제재하지 않았단 입장이다.

조 특보는 경기 후 KOVO 경기운영본부장·실장, 심판실장, 사무총장 등이 참가한 회의를 열고 강 심판에 대해 ‘잘못된 규칙 적용’을 사유로 제재금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해당 경기 영상을 돌려보며 김연경을 상벌위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유근강 심판실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보기엔 스타라고 하면 자제력도 있어야 한다”며 “다만 상벌위에 올려봤자 김연경을 처벌할 만한 규정이 없어 경고밖에 줄 수 없기에 상벌위를 열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KOVO 상벌규정 10조와 KOVO 규약 제 67조는 위원회를 열어 징계하는 대상에 대해 ‘중대한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경우들로 열거하고 있다. 이외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에 따라 무례하거나 공격적·폭력적 행동을 한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경기 중 ‘세트퇴장’이나 ‘경기퇴장’을 받은 경우에 한해 상벌위가 열려 추가 제재를 받게 된다. 경기 중 자신을 탓하며 네트를 잡아끈 뒤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선수에 대해 경기 후 따로 상벌위를 여는 경우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상벌위 개최에 대한 의견 자체가 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 시즌 국내 무대에 복귀해 경기 때마다 이슈가 되는 김연경의 다소 강한 제스처에 강력 제재를 가해 ‘김연경 길들이기’를 하려는 특보의 뜻이 반영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KOVO 심판 A씨는 “심판 배정표를 구단에 뿌린 심판 정도의 중죄를 져야 상벌위가 열릴 수 있는 것”이라며 “구단들의 불만이 임원진들의 의견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보가 상벌에 관한 의견을 낼 권한이 있는지도 쟁점이다. A씨는 “총재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특보가 회의를 주최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 심판실장은 “(조 특보가) 배구계 선배, 심판계 선배여서 누구보다 심판을 잘 안다”고 설명했다. 조 특보는 한국인 최초로 FIVB 국제심판이 된 뒤 대한배구협회 전무·부회장을 거쳐 통합 대한체육회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영향력 있는 인사다.

진상헌(가운데), 송명근(오른쪽) 등 OK금융그룹 선수들이 13일 경기가 끝난 뒤 KB손해보험 쪽을 향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한 구단 관계자 B씨는 “이미 심판한테 징계에 대한 권한을 줬고 경기가 종료됐는데 사후적으로 상벌위를 연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며 “언론에서 비판이 나오니 그를 따라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 C씨도 “앞으로 경고 대상인 모든 선수에 대해 상벌위를 고려할 것도 아니고, 그냥 김연경이 튀니까 곱게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구단 주장인 D선수는 “더한 행위들도 제재를 안 받은 경우가 많은데, 아쉬워서 네트 잡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며 “오히려 OK금융그룹과 KB손해보험 경기에서 상대를 쳐다보며 세리머니한 선수들이 더 문제 있는 행동을 한 것”이라 말했다. 해당 경기에선 최홍석과 황택의가 서로를 쳐다보며 도발하는 듯한 세리머니를 했지만 아무런 심판 제재 없이 경기가 끝난 뒤 양 측 선수들의 신경전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KOVO는 김연경 건에 대한 판단과는 달리 해당 경기 주심에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선수에 대한 상벌위 개최 논의는 당연히 없었다. D선수는 “네트를 잡아끌었다고 징계 받는 것은 배구 선수 생활 중 본 적도 없고 문제될 거리도 아닌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스타 선수들의 비애”라고 덧붙였다.

KOVO 관계자들은 징계위원회 개최 기준에 대해 모호한 답변만을 내놨다. 김영일 경기운영본부장은 “선수들이 네트를 흔드는 행위를 많이 하는데 대부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자연스러운 감정 표출”이라면서도 “김연경 건은 상황을 볼 때 자연스럽지 않았고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상벌위 (개최) 논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문용관 경기운영실장도 “비신사적인 행위는 연맹에서 사안에 따라 경중을 판단해 상벌위에 회부될 사안이라 판단하면 회부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