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 예승이가 벌써 20살, 시나리오 비평도 해줘”

입력 2020-11-17 15:58 수정 2020-11-17 16:04
이환경 감독. 리틀빅픽처스 제공


한국 코미디물 사상 첫 ‘1000만 영화’ 진기록을 쓴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50) 감독은 영화 흥행 이후 중국으로 향했다. 160억원을 들인 한중 합작 영화 ‘대단한 부녀’ 연출 총괄을 맡아서다. 그런데 사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영화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자 어깨에 벽돌을 얹은 느낌이 들더라”며 “초심을 찾으려 2~3년 동안 베이징에 머물며 다시 영화를 공부했다. 아시아권 모두가 공감할 영화를 찾는 시간이 됐다”고 떠올렸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이웃사촌’은 오랜 고민을 거친 이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1985년 도청팀장 대권(정우)은 자택 구금된 대권 후보 의식(오달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북과 내통한다는 의심도 잠시 대권은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성품의 의식과 만나면서 변화하게 된다. “전작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대권·의식의 가족 서사가 ‘7번방의 선물’보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당초 촬영을 마치고 2018년 개봉하려던 영화는 오달수의 ‘미투’로 표류하다 2년이 지나 개봉하게 됐다. 2018년 동료 배우 성추행 논란이 불거진 오달수는 의혹을 부인하다 폭로가 이어지자 활동을 중단했었다. 무혐의로 내사 종결됐지만 의아한 구석은 여전하다. 2년 동안 영화를 3~4차례 뒤집었다는 이 감독은 “미뤄진 만큼 좋은 영화로 보답하려 최선을 다했다. 영화가 캐릭터 자체로 이해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털어놨다.

최근 시사회에서 영화를 향한 시선은 엇갈렸다. 휴먼 드라마의 보편적 공식을 따라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오르는 인자한 정치인 역의 오달수가 감상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사이사이 숨겨진 웃음 포인트와 절정의 감동은 전작 못지않다는 평가다.

정우 오달수와 염혜란 김병철 조현철 등의 감초 연기도 잘 버무려져 있다. 이 감독은 코믹 연기를 하던 오달수의 변신을 두고 “누아르 얼굴을 보여주던 류승룡씨가 전작에서 때 묻지 않은 아빠가 되는 걸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런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영화 얼개의 20~30%는 이 감독이 중국에 머무르던 시절 썼다. 민주화 시절 자택 구금이라는 독특한 소재도 2016년 사드 배치로 불붙은 한중 갈등이 바탕이 됐다. 이 감독은 “펜데믹으로 아시아인이 유럽에서 차별받는 최근처럼 당시 중국도 외출이 꺼려지는 분위기였다”며 “정치 문제로 문화가 막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착안했다”고 전했다. 앞선 간담회에서 “정치적 선입견보다는 영화로 즐겨달라”는 당부를 전하긴 했지만, 고증을 위해 전 대통령들 관련 서적도 탐독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희미해진 ‘가족’ 얘기를 감독이 고집하는 이유는 ‘든든한 울타리’인 가족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 영화 곳곳에 가족 사랑이 투영돼 있다. 전작의 딸 예승이는 감독의 큰딸, ‘이웃사촌’ 예준은 9살배기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의식과 대권 역시 아버지 성함, 가족 같은 동네 친구 이름이다. 이 감독은 “예승이가 벌써 영화를 전공하는 20살 대학생이 돼 아빠 시나리오를 날카롭게 비평해준다”며 웃어 보였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선한 품성으로 알려진 이 감독은 경주마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 ‘각설탕’(2006), 부녀의 사랑을 담은 ‘챔프’(2011) 등 ‘따뜻한 영화’를 줄곧 선보여왔다. ‘7번방의 선물’을 본 할리우드 대형 제작사가 “할리우드 트렌드가 되고 있다”며 건넨 휴먼 코미디 신작도 거절했다고 한다. “웃고 울리는 휴먼 코미디가 저평가된 국내 시장에서 다른 휴머니즘 장르 감독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이 감독이 꿈꾸는 작품도 힘든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영화다. 추운 날 몸을 덥혀주는 뜨끈한 뚝배기 한 그릇 같은, 그런 영화 말이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는 ‘된장찌개’ 같은 거예요. 익숙해 특별할 건 없지만 누구나 좋아하죠.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고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