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꼬마빌딩 산 30대, 은행 빚은 엄마가 갚았다

입력 2020-11-17 14:48 수정 2020-11-17 15:46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17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분양권 채무 이용 편법증여 혐의자 85명 세무조사 착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머니 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수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은 고가 아파트를 분양받고 잔금까지 치렀다. 그러나 분양권 매수대금과 중도금, 잔금은 A씨가 아닌 A씨의 어머니가 대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소득이 높지 않아 중도금이나 잔금을 치를 여력이 없자 ‘엄마 찬스’를 쓴 셈이다. 국세청은 증여세 신고 누락 혐의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국세청은 17일 이른바 ‘부모 찬스’를 활용해 편법 증여를 한 혐의가 있는 85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자녀가 분양권을 사면 부모가 중도금과 잔금을 대납해 편법 증여하거나 자녀의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식으로 증여세 등을 탈루한 이들이다.

분양권 거래를 통한 탈루 혐의자 46명의 경우 분양권 매수대금과 중도금, 잔금 등 대납으로 증여세를 탈루하거나 분양권 매매 시 실제 거래한 금액보다 낮게 계약서를 작성(다운계약)해 분양권을 양도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특수관계자에게 분양권을 시세 대비 저가에 양도받아 증여세를 탈루한 사례도 적발됐다.

다주택자인 어머니 B씨는 고가 아파트를 수천만원만 받고 무주택자인 아들에게 양도했다. B씨는 양도소득세 과소 신고 혐의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게 됐다. 아들은 시세와 양도가의 차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채무 관계를 이용해 탈루한 39명은 부동산 등 거래 과정에서 자녀의 채무를 부모가 대신 변제한 혐의를 받는다. 또 부모 등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않고 면제받은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증여받았음에도 허위로 차입 계약을 한 사례도 적발됐다.

예를 들어 30대 C씨는 수십억원대 꼬마빌딩을 사면서 은행이 양도인을 채무자로 건물에 설정해놓은 근저당 채무 수억원을 갚았다. 그러나 C씨의 연령, 소득, 재산 상태 등을 감안했을 때 자력으로 채무를 상환하기에는 부족했다. 국세청은 고액 자산가인 C씨의 어머니가 채무를 대신 상환해주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했다고 판단했다.

국세청은 편법 증여가 확인되면 탈루한 세금과 가산세를 추징하고, 부동산 거래 관련 법령 위반 내용을 관련 기관에 통보할 계획이다. 자금 원천이 사업자금 유출에서 비롯됐거나 사업소득을 탈루한 혐의가 드러나면 관련 사업체까지 세무조사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다운계약 등 거짓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면 양도세 비과세·감면 요건을 충족한다 해도 적용이 배제된다. 이는 부동산 양도자뿐만 아니라 취득한 쪽이 이후 부동산을 처분할 때도 마찬가지다.

국세청은 “주택·분양권 거래 내역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으로 다운계약 등 비정상 거래를 상시 포착하고 근저당권 자료와 자금조달계획서 등 다양한 과세 정보를 연계 분석해 채무를 이용한 편법 증여 혐의를 파악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사후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