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이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과 관련해 “미국이 규칙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강력한 견제 의도를 드러냈다. 중국이 아닌 다른 민주 국가들과의 협력 필요성을 거론하며 세계 무역 질서에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도 강조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RCEP 서명 문제 관련 질의가 나오자 미국이 전 세계 무역 규모의 25%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또 다른 25%, 혹은 그 이상인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이 지역에서 유일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결과를 좌우하도록 하는 대신 우리가 이 길의 규칙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다자주의 대신 고립주의의 길을 택한 사이에 중국이 RCEP을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향후 무역 관련 규칙을 정하는 문제에서 미국을 필두로 한 민주 진영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RCEP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 15개국이 지난 15일 서명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미·중 무역 분쟁과 맞물리면서 미국에 대응해 중국이 사실상 RCEP을 주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12개국이 참여한 TPP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식 사흘 만에 협정 탈퇴를 선언했었다. 이에 따라 미 언론에선 RCEP 서명 이후 무역 경쟁에서 미국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부에선 바이든 당선인이 오바마 행정부 때 부통령을 지낸 경험에 따라 TPP 복귀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TPP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체결됐었다. 한국의 경우 아직 TPP에 가입하지 않아 바이든 당선인이 TPP 복귀를 추진할 경우 가입 요청을 받을 수 있다.
또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세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일종의 원칙을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노동자에게 투자하고 그들을 더 경쟁력 있게 만드는 일, 무역 합의를 할 때 노동자와 환경 보호론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분명히 포함될 것, 징벌적 무역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는 “우리 친구의 눈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독재자를 포용한다는 생각은 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했던 미국 우선주의가 동맹과 적국 구분 없이 무역 마찰을 일으켰다는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