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 “한국 ‘상추쌈의 나라’ 맞지만, 우월 따질 일 아냐”[인터뷰]

입력 2020-11-17 00:12 수정 2020-11-17 00:12
중국 유튜버가 싼 논란의 상추쌈(왼쪽 사진)과 전형적인 한국쌈(오른쪽). 게티이미지뱅크, 전서소가 유튜브 캡처

중국에서 한복이 중국 의복이라는 주장이 나온 데 이어 한 유튜버가 쌈 문화를 중국 윈난성 지역의 전통 음식이라고 소개해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상추쌈이 한국의 식문화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문화 우월주의로 흐르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논란이 된 건 중국 윈난성에 거주하는 아편(본명 둥메이화)이라는 경찰 출신 중국인의 요리 채널 전서소가에 지난 10일 올라온 ‘고목 호두, 백년에 거쳐 머금어진 과실의 향’이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이 영상 후반부에 아편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호두 기름에 구운 삼겹살과 소고기를 마늘, 고추와 함께 쌈을 싸서 먹는 모습이 나왔는데 이 부분을 두고 비판이 나온 것.

아편이 쌈을 싸먹는 모습. 전서소가 유튜브 캡처

해당 영상에 “중국이 (언제부터) 쌈을 싸 먹었냐” “한글도 세종대왕도 김치도 중국 거라 주장하겠다”는 등의 비판 댓글이 달렸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중국어 등으로도 비판이 이어졌다.

거센 반응에 아편도 “상추에 싸서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은 고향에서 흔한 관행”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상추를 다른 음식과 함께 먹는 지역이 많다”고 해명하는 반박 댓글을 달았다.

이 논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국민일보는 16일 맛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상추쌈은 원류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한국에서 특히 독특한 보편적 음식 문화인 건 맞다”면서도 “지나친 문화 우월주의 논쟁으로 번질 사안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국민일보DB

-최근에 한 중국 유튜버가 상추쌈을 중국 윈난성 전통 음식인 것처럼 소개해서 국내에서 논란이 있었다.

“상추쌈 비슷한 음식이 상추를 키우는 지역에 있을 수 있다. 베트남에서도 상추에다가 튀김류를 싸서 먹는다. 하지만 한국의 상추쌈은 굉장히 범용적으로 쓰인다. 조금 다르다. 한국은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오리고기도, 심지어 생선회도 싸 먹는다. 그래서 상추쌈의 범용성을 생각한다면 한국이 가장 독특하다. 중국에서는 전체적으로 보편적인 일은 아닐 거다. 상추쌈이라는 것이 한국 대한민국만의 보편적인 음식 관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고 본다.”

-상추쌈이라는 건 원류는 따질 수 없지만 현재로 봤을 때는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식문화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우리가 이탈리아를 파스타의 나라라고 하는 건 파스타가 가장 다양하게 존재하고 국민도 이를 가장 많이 먹기 때문이다. 일본을 스시, 초밥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도 같다. 이를 보면 특정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을 즐기느냐가 해당 음식의 나라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한국도 감히 ‘상추쌈의 나라’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그럼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건 지나치지 않다고 보는 것인가.

“그렇다. 다만 한·중·일 3국의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가 강하다. 이를 벗어날 때가 됐다. 음식이라는 것이 서로 뒤섞이고 같은 재료가 있으면 서로 비슷하게 먹기도 하고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상추 논쟁이 문화 우월주의 논쟁으로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다면서 한복의 원조가 한푸라고 주장하는 중국 유튜버. Shiyin 유튜브 캡처

-최근에 한복공정 때문에 한국 누리꾼들의 우려가 큰 것 같다.

“지금의 문화 주도세력을 보자고 하면 한국이 우위에 있다. 전 세계 문화 강국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코로나19 방역 등 국가 브랜드 굉장히 올라가 있는 상태다. 우리가 문화 강국 국민으로서 그냥 ‘중국도 상추쌈 먹을 수 있는 거구나’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한국 사람들은 ‘동북공정’처럼 국가가 주도적으로 소프트파워 분야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중국의 모습에 불안해하는 것 같다.

“중국 정치를 이해해야 한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다. 그래서 중국이 여러 가지 문화를 결합하는 그런 동북공정 같은 일도 진행된 것이다. 물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가져가는 일이 기분이 상하는 것도 맞다. 다만 (우리가) 대처하는 방식이 다원주의가 돼야 한다. 특히 음식은 그렇다. 상추쌈에 대한 원류를 누가 추적해서 따질 수 있겠나. 하지만 상추쌈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들이 가장 다양하게 일상에서 즐기고 있는 음식이니까 그 유튜버 보고 한국 와서 보라는 것이 낫다.”

-음식 문화에서만큼은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하건 한국은 한국의 문화를 잘 키워나가면 된다는 이야기인 듯싶다.

“그렇다. 중국이 원류라고 주장한다고 우리가 원류라고 맞서 싸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추쌈이 대단한 발견이고, 미식의 기술이고 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상추쌈을 옛날부터 많이 먹었다는 식으로 우월함을 주장하는 것은 중국이 하고 있는 일과 똑같은 일이다. 일례로 예전에 한국에서 한 언론사가 각국 대사관에 자국 음식을 잘하는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공문 보냈다. 근데 그때 프랑스는 ‘그 어떤 음식을 프랑스 음식이라고 규정한 바가 없다’며 답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문화 강국이라는 걸 그 한 마디로 끝을 내버렸다. 어떤 음식도 프랑스 음식이라고 규정하지 않는 열린 자세가 프랑스를 미식의 나라라고 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