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장관님, 겁이 납니다” 16년차 택배기사의 호소

입력 2020-11-16 16:24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한 택배노동자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물량 폭증으로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과로 방지 대책을 꺼내든 가운데 현장에선 ‘근무조건이 개선되는 대신 벌이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푼 두푼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의 선의가 역효과를 부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써달라는 호소다.

16일 페이스북에 따르면 지난 13일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의 계정에는 장문의 글 하나가 달렸다. 이 장관이 전날 정부의 ‘택배기사 과로 방지 대책’이 발표됐다며 관련 정책을 소개하는 글에 남겨진 댓글이었다. 앞서 정부는 택배기사의 하루 작업시간 한도를 정하고, 주 5일 근무와 산재보험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경남 양산에서 택배 일을 하는 16년차 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은 정부 발표가 동료들 사이에서 하루종일 이슈였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주5일 하는거야? 구역을 줄이나? 일 더 하려고 소장한테 구역 더 달라고하면 절대 안주겠네! 내용은 대충 이렇다”며 “기사들 대부분은 어려운 시절을 벗어나는 탈출구로 선택한 직업이라 근무조건만 좋아지고 수익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발표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페이스북 캡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2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한 뒤 브리핑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노동자가 존중받아야 하기에, 더 이상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아야 하기에 해야만 하는 당연한 조치들이 정작 현직에서는 덜컥 겁이 난다”며 “이제 겨우 먹고 살만한데…”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벌이만 생각하면 택배를 하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많은 건 일한 만큼은 벌어간다는 단순한 믿음 때문일텐데 갑자기 노동자가 되고, 수량을 제한하는 기준이 생겼다”며 “계층을 이동하는 사다리는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열심히 일해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려는 기사들의 바람을 꺾어 버리는 정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같은 기사들의 호소는 정부 정책이 되레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 탓에 나왔다. 택배사들은 과로사로 의심되는 죽음이 잇따르자 뒤늦게 분류 작업에 추가인력을 투입하거나 심야배송을 중단하겠다고 했지만, 건당 배송 수수료는 여전히 800원 수준이다. 많이 배송할수록 많은 돈을 버는 체계와 배송료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임금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진택배 노동자 故 김모(36)씨가 죽기 나흘 전 남긴 메시지.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하는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추모 국화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김태완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공동대표도 앞선 통화에서 “수수료도 낮지만 유류비나 기타 물품비까지 다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차량 감가상각비 등 기타 비용을 다 포함하면 월 수입에서 40%가량이 빠진다”며 “한 달에 400만원어치 일을 해도 실제 주머니에는 240만원밖에 남지 않는 셈”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현직 택배기사의 호소에 이 장관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것 같다. 조금 더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이른바 택배법으로 불리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은 여야 이견으로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