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다움’ 나타나지 않는다?… ‘성추행 무죄’ 뒤집은 대법

입력 2020-11-16 11:33

성추행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편의점 본사 직원인 A씨는 2017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평소 업무로 만나던 점주인 B씨에게 입을 맞추고 신체를 접촉하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경위에 관해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해 신빙성이 인정되고, 폐쇄회로(CC)TV 내용과도 부합한다며 A씨에게 벌금 4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해자를 추행해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반면 2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편의점 CCTV 영상에 찍힌 피해자가 A씨의 신체접촉을 피하면서도 종종 웃는 모습을 보인 점 등을 근거로 “피해자의 행동이 이미 이성적으로 가까운 관계에서 장난치는 모습으로 보이고, 의사에 반해 강제로 접촉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건 발생 이후 촬영된 CCTV 영상을 토대로 “A씨와 B씨의 모습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의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근거로 내세운 사정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으로, 법리에 비춰 타당하지 않다”며 “피해자는 피고인의 신체 접촉을 피하거나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으며 이는 업무상 정면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관계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정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 진술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면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통해 이를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며 “그러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 등을 배척한 판결에는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