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까지 언급한 종전선언은 트럼프용 접근방식이지, 새롭게 들어설 조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한·미 간 협의에 나서야 합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15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문재인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북한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의 귀를 무조건 잡아끌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게 하면서 사고가 생겼다”며 “지난 3년간은 신기루로, 정상끼리 만나서 리얼리티쇼만 하다가 끝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종전선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노려볼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로 꼽혔고, 문재인정부가 남·북·미 대화에서 지속 강조해온 주요 의제다. 북·미 정상은 두 차례 회담을 가졌지만 6·12 싱가포르 합의 외에는 실질적인 비핵화에선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 전 원장은 “한·미 간에도 불명확한 비핵화 최종상태(엔드 스테이트)를 명확히 하고, 비핵화를 이뤄낼 수 있는 공동안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영변 핵시설 폐기를 조건으로 전면적인 유엔 대북 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문재인정부식 스몰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칙을 토대로 보텀업(bottom-up) 협상을 추구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할 만큼 문재인정부의 외교전략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윤 전 원장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발맞춰 외교·안보라인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 전 원장은 “오바마 행정부 때 일했던 인사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과 국무부에 포진할 것”이라며 “우리 외교부에도 과거 오바마 행정부를 상대했던 실무진 가운데 인연도 있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적극 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2010년 시작, 2016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의(2+2 회의)’ 재개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외교당국이 국장급 협의체인 ‘동맹대화’를 만든 걸 어마어마한 일처럼 얘기했는데, 국장급 채널은 상시적인 것”이라며 “과거 정부들은 2+2회의를 통해서 한·미 동맹의 중요한 현안들을 논의했다. 그 정도 수준의 상위급 레벨 간 긴밀한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도 경제분야에서 미국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데,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경중안미(經中安美)’ 우리의 전략은 모순”이라며 “안보든 경제든 미국이 최우선으로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윤 전 원장은 또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15년 12월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위해 막후에서 노력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한·일 관계에서 트럼프 행정부보다는 일정 부분 중재 역할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위안부 합의에 적극 개입한 바 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은 한·일 중재에 나섰을 때를 술회하며 “부부관계를 복원시키는 이혼 상담사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윤 전 원장은 “지금의 한·일 갈등 핵심인 강제징용 문제는 국제법적으로 복잡한 사안인 만큼 미국이 일방을 편들면서, 다른 한쪽을 압박해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