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거래소 이사장→손보협회장 ‘석연찮은 직행’… 그 뒤엔 ‘보이지 않는 손’?

입력 2020-11-15 19:17 수정 2020-11-15 19:42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의 손해보험협회장 선임 과정을 놓고 주요 금융단체장 자리를 교통정리 하듯 고위 금융관료 출신에게 안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위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일종의 차례를 정하는 사이 해당 기관은 수장 공백을 애써 감수하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손보협회 임시총회에서 신임 협회장으로 최종 선임된 정 이사장은 공식 임기 만료 15일 만인 오는 16일 퇴임식을 갖는다. 손보협회장 임기는 다음 달 21일부터다. 정작 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후임 선정이 끝날 때까지 공석으로 남는다.

이번 손보협회장 선임이나 후임 거래소 이사장 공모 일정은 모두 정 이사장에게 맞춰 진행됐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손보협회 회장추천위원회는 정 이사장의 공식 임기가 끝난 다음날인 이달 2일 3차 회의를 열어 정 이사장을 단독 후보로 추대하며 사실상 내정했다. 정 이사장이 거래소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시점도 영업일 기준으로 손보협회장 최종 승인(금요일) 다음날(월요일)이다.


거래소는 정 이사장의 공식 임기 만료일(이달 1일)이 열흘 넘게 지나도록 차기 이사장 선임에 손을 놓고 있었다. 정 이사장의 자리 이동 절차가 마무리된 13일에야 기다렸다는 듯 새 이사장 모집 공고를 내며 정식 공모 일정을 시작했다. 보통은 기관장 임기가 끝나기 전부터 후임자 물색에 나서지만 거래소는 정 이사장의 다음 행선지가 결정될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손보협회는 ‘정 이사장 모시기’에, 거래소는 ‘정 이사장 보내드리기’에 일정을 맞췄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거래소가 새 이사장을 맞기까지는 적어도 한 달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일까지인 지원서 접수부터 각종 심사와 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 주주총회 승인까지 갈 길이 멀다. 이 기간에는 채남기 경영지원본부장 겸 부이사장이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는다.

정 이사장이 당초 손보협회장 하마평에 오른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은 ‘보이지 않는 손’의 개입을 더욱 의심하게 한다. 손보협회 회추위가 지난달 27일 2차 회의에서 정 이사장을 5명의 후보군에 포함했을 때 금융권에서는 “의외의 인물”이라는 평이 대체적이었다.

그동안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은 회추위 2차 회의 다음날 ‘고사’ 형식으로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이런 그가 지금은 차기 생명보험협회장 후보로 물망에 올라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생보협회 회추위는 오는 18일 첫 회의를 열고 회장 후보 선임 일정을 논의한다.

정 이사장은 형식상 투표를 통해 손보협회장에 선임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청와대나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은 정 이사장이 부산 출신 금융인의 모임인 ‘부금회’ 일원이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서울대 경제학과 81학번 동기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손보업계는 정 이사장의 이런 인맥이 회장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정 이사장은 행정고시 27회로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뒤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과 상임위원을 지낸 금융관료 출신이다. 정 이사장의 손보협회장 선임을 두고 “결국 또 모피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모피아는 재무부의 알파벳 약자(MOF)와 범죄조직을 뜻하는 ‘마피아(Mafia)’를 결합한 말이다. 이들이 핵심 부처 공무원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강한 유대, 정관계 영향력 등을 바탕으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비판적 의미가 담겨 있다.

모피아 혹은 금융 당국이 내부 고위직 인사 시기와 내용에 맞춰 유관기관장 자리를 정리 중이라는 의혹도 있다. 공교롭게도 차기 거래소 이사장으로 거론되던 도규상 전 경제정책비서관이 신임 금융위 부위원장에 내정된 게 이달 1일로 정 이사장의 거취가 사실상 결정된 시기와 일치한다. 일각에서는 도 부위원장이 아닌 다른 인물이 거래소 이사장으로 낙점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현재 가장 유력한 인물은 도 부위원장 취임으로 퇴임한 손병두 전 부위원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초 청와대가 이번 금융협회장 인선에는 간여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적어도 당국 차원에서 개입하는 게 아닌가 한다”며 “거래소 이사장과 남은 협회장에 누가 앉는지를 보면 좀 더 분명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