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식 “미·중 갈등 따른 정세 변화 고려한 새 대북정책 필요”

입력 2020-11-15 16:06 수정 2020-11-15 16:47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사조빌딩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말을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중국의 대북지원이 더욱 강화되고 북한 경제력도 강해져 ‘햇볕정책’ 같은 지원책은 이제 효용이 없을 전망입니다. 미국 새 행정부와 동북아 질서 변화에 맞춰 대북정책을 빨리 협의해야 합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1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이 북한에 안보·경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며 “역내 정세가 변하면서 ‘햇볕정책’의 기조를 계승한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미국과의 대결에서 우군이 절실한 중국이 대북 제재의 ‘뒷문’을 열어주고, 식량 지원 등을 이어가며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군의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 행사 등을 계기로 북·중은 더욱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전 차관은 “한마디로 북한 입장에선 한국에 굳이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의 군사·경제력이 눈에 띄게 성장한 점도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고 짚었다. 김 전 차관은 “김대중(DJ)정부의 햇볕정책이 통했던 이유는 당시 북한은 핵무기도 없고 심각한 경제난으로 남측에 손을 내밀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핵능력은 고도화됐고 경제도 발전해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수준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이 15일 서울 서대문구 사조빌딩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말을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김 전 차관은 “역내 정세가 20년 전과 비교해 180도 변했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라며 “북핵 위협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협력을 통해 북·미 관계 진전까지 견인한다는 기존의 대북정책 노선에 변화를 줘야한다는 의미다. 김 전 차관은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21세기 신냉전시대에 북한은 중국에 더 다가가고 있다”며 “미·중 사이 어정쩡한 태도가 지속되면 우리 안보는 결국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전 차관은 향후 동북아 질서 변화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전략을 수립해 미국 측에 적극 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전 차관은 “북한 비핵화 이후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가져갈지,새로 재편한 동북아 질서에서 통일된 한국이 어떠한 역할을 맡을지 등을 미국에 설명하고 각인시켜야 한다”며 “그래야 미국도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북 관계 개선은 내년에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전 차관은 “전통적으로 북한은 우리에게 얻을 게 있다고 판단될 때 관계 개선에 나섰다”며 “문제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조건 없는 재개’ 용의를 밝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대북 제재에 가로막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2차 북·미 정상회담도 ‘노딜’로 끝났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은 한국의 효용성이 ‘다 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와의 대화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대남 공세는 오히려 거세질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등 국내외 여러 현안을 다루느라 분주한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약한 고리인 한국을 때릴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전 차관은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도 폭파 및 우리 공무원 사살 사건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이 미국 정권교체기 혼란을 틈타 어떤 식으로든 무력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이명박정부 당시인 2011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통일부 차관을 역임했다. 2009년 11월에는 개성에서 원동연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만나 남북 현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이뤄진 1차 남북정상회담에 실무자로 배석한 바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