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태일을 파냐?” 윤희숙 페북글에 진중권도 비난

입력 2020-11-14 07:18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13일 주 52시간 근로제를 중소기업에 전면 적용하는 것에 대해 “코로나19 극복 이후로 연기하는 게 ‘전태일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당은 논평을 통해 전태일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고 비난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왜 전태일을 파냐”며 비판했다.


윤 의원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50일 앞으로 다가온 ‘52시간 근로’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절망하고 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없애 근로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유예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 근로기준법이 1953년 전쟁통에 만들어지면서, 주변 선진국법을 베껴 ‘1일 8시간 근로’를 채택했다”면서 “제정 당시 법과 현실이 괴리됐다”고 말했다.

“선량하고 반듯한 젊은이 전태일로서는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는데 법을 지키지 않는 비참한 근로조건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간다”고 한 윤 의원은 “우리 토양의 특수성은 외면하고 선진국 제도 이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약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전태일 이후 50년간 곱씹어온 교훈”이라고 밝혔다.

윤 의원은 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이 정부에 기대하기 어려운 능력이라 이미 판명됐다”며 “그러나 적어도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없애 근로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52시간 확대 스케쥴은 코로나 극복 이후로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노동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전태일 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열사의 외침이 어떻게 주 52시간 도입을 연기하라는 것으로 들리는지 분노를 넘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관련 보도를 공유한 뒤 “이런 소리 하는 데에 왜 전태일을 팔아?”라고 반문한 뒤 “저러니 저 당은 답이 없는 거다. 코로나 이전에는 찬성했나”라고 비난했다.

권태훈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홍보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라”라며 “이분이 전태일의 삶에 대해서 단 한 번이라도 관심 갖고 지켜봤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한탄했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보고 ‘아, 이 법이 잘 지켜진다면 우리 노동자들이 그래도 조금은 살 만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라고 한 권 홍보위원장은 “그게 버젓이 안 지켜지는 현실, 진정을 해도 법을 집행한다고 믿었던 정부 기관조차 법을 지키지 않는 현실을 보며 절망했던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의 서희원 변호사 역시 같은 매체에 “당시 근로기준법이 문제인 게 아니라 적용을 못 받는 열악한 현실이 문제였던 것”이라며 “논리를 비틀어서 말이 안 되는 주장을 말로 들리게끔 써놨다”라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또 “2018년도에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래, 중소기업들의 준비를 위해 이미 2년 정도의 계도기간을 줘 왔다”라며 “경영계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택배 노동자도 그렇고 장시간 근로 때문에 과로사하는 분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공당의 국회의원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 다음은 윤희숙 의원 페이스북 전문

“52시간 근로 중소기업 전면적용을 코로나 극복 이후로 연기하는 게 전태일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 50년 전 오늘 청년 전태일은“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고 스러졌습니다. 산업화시대의 어둠을 밝힌 불꽃이 된 그를 추모합니다.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자각하면서부터 저는 전태일을 떠올리면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됩니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전쟁통에 만들어졌습니다. 주변 선진국의 법을 갖다놓고 베껴 ‘1일 8시간 근로’를 채택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극빈국에서, 조금의 일거리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절박했던 시절에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법을 만듦으로써 아예 실효성이 배제된 것이지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거리만 준다면 근로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근로 희망자들이 새벽마다 공장문 앞에 줄을 길게 설 정도였으니까요.

선량하고 반듯한 젊은이 전태일로서는 근로기준법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법을 지키지 않는 비참한 근로조건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저는 그 죽음의 책임이 대부분 당시 법을 만들고 정책을 시행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난한 후진국에서 지식인이래 봤자 이론과 현실을 균형 있게 이해해 법과 정책을 현실적으로 설계할 능력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그들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그런 우매함을 현재 시점에서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온 ‘52시간 근로’ 때문에 안 그래도 코로나를 견디느라 죽을둥살둥인 중소기업들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근로 규제의 획일성과 경직성에 대해서는 그간 많은 이들이 지적해왔습니다만 제도 보완은 더딥니다. 보완의 최소한인 탄력근로도 국회에 몇 년째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유예 없이 52시간을 적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코로나 재난 지원이라며 20조원에 이르는 돈을 무차별적으로, 때론 선별적으로 뿌려온 정부가 죽겠다는 중소기업을 빨리 죽으라고 등 떠미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념적 도그마만 고집하거나, 우리 토양의 특수성은 외면하고 선진국 제도 이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약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전태일 이후 50년간, 특히 약자를 위한답시고 최저임금을 급등시켜 수많은 약자의 일자리를 뺏은 문재인 정부 동안 곱씹어온 교훈입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이 정부에 기대하기 어려운 능력이라 이미 판명됐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없애 근로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52시간 확대 스케쥴은 코로나 극복 이후로 유예해야 합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