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병원 내 화장실 곳곳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는 영상이 12일(현지시간) 공개됐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코로나19 환자 대응에 집중하는 사이 다른 환자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현지 장관 및 행정당국 등은 “통제불능” “막을 수 없는 대학살”을 언급하는 등 지난 봄과 같은 이탈리아발 의료시스템 붕괴 사태가 재현됐다.
현지 매체 ’라 레푸블리카’와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최대 규모인 카르다렐리 병원에서 신원 미상인 한 남성이 병원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모습을 담은 영상이 퍼져 현지인들을 경악케 했다.
영상에는 병원 응급실과 내부 화장실 곳곳에 시신과 환자, 배설물이 널브러진 모습이 담겼다. 촬영자는 “이 남자는 죽었다. 여기는 카르다렐리 병원 응급실이다”라고 외친다. 84세의 이 남성은 코로나19 응급병동에서 치료 순번을 기다리다가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병실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가리키며 “이 여성은 배설물 범벅이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불에 둘둘 말린 채 바닥에 팽개쳐진 여성도 있다. 촬영자는 “이 여성의 상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제보자는 로사리오 라모니카(30)라는 남성으로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겪은 뒤 이틀째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10여명의 의심환자와 같은 병실을 썼다.
그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리기 위해 영상을 촬영했다면서 “내가 (심장마비 노인을 발견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신경 꺼라”고 말하는 병원 직원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일 확진자 3만7000명 넘어…일부 지역은 의료 붕괴
12일(현지시간) 기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입원 환자는 3만3043명으로 최고기록을 세웠다. 1차 유행 때인 4월 4일 기록(3만3004명)을 넘어섰다.
중환자 수는 3170명으로 1차 유행 당시 최고치(4월 3일·4068명)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일선 병원들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환자로 대혼란에 빠졌다. 이탈리아의 11일 기준 코로나19 환자의 병상 점유율은 전국 평균 52%로 정부가 한계치로 설정한 40%를 크게 넘었다. 바이러스 확산세가 가장 심각한 북부 지역의 경우 피에몬테주 92%, 롬바르디아주 75% 등으로 사실상 정상적인 의료 체계가 붕괴했다.
이들 지역의 병원은 수술실·소아과·노인병동 등을 코로나19 병동으로 끌어쓰는 등 환자 수용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한계에 도달했다.
밀라노 북부 치르콜로병원의 중환자병동 책임자인 루카 카브리니는 “감당 가능한 한계치에 매우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리 멀지 않다”고 말했다.
남부 나폴리 지역에서는 병원 응급실의 빈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다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잇따라 알려지고 있다. 남부 시칠리아주 주도인 팔레르모 당국은 현재의 확산세가 지속하면 “대학살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부 장관은 12일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캄파니아 지역은 통제 불능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중앙 정부는 개입을 서둘러라”라고 호소했다.
12일 기준 이탈리아의 하루 확진자 수는 3만7978명, 사망자 수는 636명이다. 일일 사망자는 지난 4월 6일 이래 최대다.
누적 확진자는 106만6401명, 총사망자는 4만3589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