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P를 수상해) 기쁘단 표현보다 더 높은 표현을 쓰고 싶은데, 이거밖에 없어서 아쉬울 정도에요.”
두산 베어스의 승리를 이끈 ‘깜짝 역투’를 보여주며 플레이오프 4차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김민규가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들뜬 마음을 숨기는 듯 덤덤한 표정 사이로 감출 수 없는 미소도 번졌다.
두산은 13일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4차전 경기에서 KT에 2대 0으로 승리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6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사실 이날 두산은 1회 초부터 위기를 맞았다. 선발 투수로 나선 유희관이 ⅓이닝 동안 3연속 안타를 맞는 최악의 피칭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2연승 뒤 2연패로 시리즈가 자칫 5차전까지 갈 위기 상황에서 팀을 구해낸 건 4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프로 3년차’ 투수 김민규의 역투였다.
김태형 감독도 경기 후 김민규의 활약에 박수를 보냈다. 김 감독은 빠른 투수 교체에 대해 “유희관이 승부가 안 될 것 같고 계속 둬야 될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바꿨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규가 그 상황에서 점수를 주지 말라고 낸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최대한 끌고 가주고 2~3실점 내로 버텨주면 (이)승진이 내자는 계산을 했다”며 “오늘 방망이도 너무 안 터졌는데 (민규가) 너무 잘 던져주고 잘해줬다”고 엄지를 치켜 세웠다.
김민규는 사실 지난 9월 17일 KT 위즈와의 정규시즌 경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해 호투를 펼친 바 있다. 이전까지 개인 최다 투구 이닝이 3이닝에 불과했던 김민규는 유희관이 1⅔이닝 동안 5피안타 3실점으로 흔들리자 구원 등판해 5⅓이닝 3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의 맹활약을 했다.
김민규는 이에 대해 “비슷한 경험을 해서 좀 더 자신감 있게 (마운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며 “KT 선수들을 상대로 자신있게 공을 던지면 못 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민규는 포스트시즌 등판 경험이 거의 없다. 10일 KT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처음 공을 던진 뒤 이날이 두 번째였다. 하지만 등판 경험이 쌓이자 긴장감이 덜해졌고, 호투도 펼칠 수 있었다.
김민규는 “(첫 등판) 그 때는 다리가 없는 것 같은 정도의 긴장감이었는데, 오늘은 적당한 긴장감이 들어 (경기에) 집중이 잘 됐다”며 “준비 시간이 짧았지만 전날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긴장이 풀렸다”고 밝혔다. 이어 “컨디션은 보통 정도였지만 집중력이 좋아 제구가 잘 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민규는 이어 수차례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순간은 (8월 2일) NC 다이노스전 연장 12회에 등판해 1군 첫 세이브를 올린 거였는데, 오늘 바뀌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이겨서 너무 기분이 좋고 한국시리즈에선 어떤 타자가 나와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전력을 다해 던질 생각”이라고 단호한 각오를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