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간) 실시된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결론 난 지 일주일 가량 흘렀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우편 투표 문제점을 지적했던 트럼프는 선거 이후 선거 조작을 주장하며 본격적인 법적 투쟁에 나섰다. 공화당과 트럼프 측근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위해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우리는 모든 합법적인 투표가 집계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노리는 수는 무엇인가.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가디언즈, 악시오스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측이 벌이는 소송전은 ‘선거 조작’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얻어내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치밀한 시나리오를 단계별로 들여다본다.
1. 소송 통해 ‘선거 결과 확정’ 늦추기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들은 캠프가 세운 전략이 ‘법원이 주(州) 정부의 선거 결과 확정에 제동을 걸도록 하고, 결국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가 선거인단을 선출하게 하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말하면 소송을 통해 시간을 버는 전략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대선은 전국민 투표를 통해 주별 선거인단을 임명하고, 이 선거인단이 그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게 최종 투표함으로써 최종 선거가 마무리된다.
지난 3일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인단 선출이 마무리됐고 다음달 14일 선거인단에 의한 주별 대통령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주 정부의 국무장관이 지난 선거 결과를 공식적으로 확정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일정 시한이 있다. 시한을 넘기면 선거인단 임명권이 주 의회로 넘어가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진행 시킴으로써 주 의회가 선거 결과를 확정할 수 없도록 지연시키겠다는 것이다.
2. 공화당이 장악한 3개 주 의회 공략
주 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자를 발표하지 못하거나, 확정시한을 넘기게 되면 헌법에 따라 선거인단 임명권은 주 의회로 넘어간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이 마지막까지 역전극을 벌이며 경합했던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애리조나주는 모두 공화당이 주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이들 주에서 선거 결과 확정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계획대로 주 정부가 시한 내 승자를 확정하지 못하면 공화당이 장악한 주 의회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할 선거인단이 임명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주에서 모두 대선 결과 확정이 지연돼 주 의회가 트럼프 지지 선거인단을 뽑게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대로 될 여지가 없진 않은 셈이다. 3개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는 모두 47명이다.
3. 법원이 받아들일까
이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역시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법원이 트럼프 캠프 측 주장대로 선거 결과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캠프 측에서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짐 조던 하원의원, 팻 시폴론 백악관 법률고문 등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측근들이 총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도 펜실베이니아와 미시간에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펜실베이니아주 국무장관과 7개 카운티의 변호인은 펜실베이니아 중부 연방지방법원에 트럼프 대통령 측 소송을 아예 각하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당선인 확정을 주별로 설정된 기간 안에 확정되지 않으면 결정권이 넘어가는 만큼 내용을 심리함으로써 시간이 지연될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사 심리가 진행되더라도 법원이 선거 결과 확정을 막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작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대규모 선거 부정’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트럼프 캠프는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캠프의 대다수 참모들도 이 시나리오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WSJ는 이 관계자들이 “이런 시나리오를 논의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4. 2024년 대선 출마 선언 통한 영향력 유지
법원을 통한 시나리오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트럼프는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트럼프대통령이 이르면 다음 달 중 2024년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로나 맥대니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 연임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게 2024년 대선 출마계획의 서막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2024년 대선 출마계획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트럼프는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맥대니얼이 RNC를 계속 이끄는 것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우린 역대 어떤 현직 대통령보다 많은 7200만표를 얻었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로이터통신은 이 발언 역시 4년 뒤 대선을 준비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믹 멀베이니 전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도 지난 5일 국제유럽문제연구소(IIEA) 주최 화상 세미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정치에 관여하려 할 것이다. 그는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만일 이번 선거에서 패한다면 2024년에 틀림없이(absolutely) 재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는 공화당 RNC가 내년 1월 말 차기 위원장 선거를 치를 예정임을 들어 이 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에서 패해 퇴임한 뒤에도 당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