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이 경영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거대 국적 항공사가 탄생할지를 놓고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항공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게 될 사안인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며 이날 주식시장에서 금호산업, 아시아나, 한진, 대한항공 등 양사 관련주들이 급등했다.
인수 성사 시 1988년 아시아나항공 설립 이후 32년간 유지해 온 국내 항공사 ‘2톱’ 시대가 저물고 대한항공 독주 체제가 등장하게 되는 만큼 금융당국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등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높은 부채와 노조 반발 등 예상되는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회장과 대립해온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는 아시아나 인수에 공식 반대 입장을 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13일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에 대해 “확정된 것이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금융권과 정부에서는 이미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는 이르면 16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 회의(산경장)에서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방안을 논의,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도 이미 수개월 전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산업은행과 논의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와 관련해 “산경장 회의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산은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고 다양한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면 정부로서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투자하고, 한진칼이 금호산업이 가진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을 사들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산은은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옵션 중에서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추진이 사실상 공식화되면서 주식시장도 들썩였다. 이날 코스피시장에서 금호산업우는 전 거래일 대비 가격제한폭(29.89%)까지 치솟은 4만8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아시아나IDT(9.34%), 아시아나항공(7.79%), 에어부산(6.81%), 금호산업(6.75%) 등도 급등했다. 대한항공우(9.41%), 한진(8.40%) 등 대한항공 관련주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단번에 국내 압도적 시장 점유자가 되는 한편 세계 10위권 규모로 올라서게 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발간한 ‘세계 항공 운송 통계 2020’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여객 RPK(항공편당 유상승객 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것) 기준 세계 항공사 순위에서 대한항공은 18위, 아시아나항공은 32위를 차지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치면 10위인 아메리칸 항공과 비슷해지는 셈이다.
국제 여객 수송 인원수 기준으로도 10위에 올라선다. 국제 화물 수송량 순위에서는 대한항공(5위)과 아시아나항공(23위)을 합치면 캐세이 퍼시픽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할 수 있다.
보유 항공기로만 따져도 현재 대한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164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79대로 둘을 합치면 249대가 된다. 에어프랑스(220여대), 루프트한자(280여대) 등이 세계 10위권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선 수송객 점유율은 자회사까지 합치면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다.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 점유율까지 더하면 62.5%에 달한다.
다만 이 부분 때문에 경쟁을 제한한다고 판단될 여지가 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회사가 결합해 집중도가 매우 높아질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단할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점유율이 높다고 무조건 경쟁제한성이 발생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지난 4월 공정위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했을 때의 논리처럼 아시아나항공이 기업결합 외에는 회생할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되는 등 여러 제반 상황을 종합해 판단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최악의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항공업계 상황과 내부 직원들의 반대는 인수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대한항공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아시아나항공열린조종사노조, 아시아나항공노조 등 양사 6개 노조는 다음 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6개 노조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항공이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작년 대비 90%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빅딜’의 부담도 매우 크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올해 2분기 2천291%에 달하고 부채 규모가 12조원이 넘기 때문에 내부에서는 인수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회장과 대립해온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는 공식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KCGI는 이날 ‘한진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입장’을 통해 “고객 피해와 주주, 채권단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다른 주주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현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한 대책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적 시너지와 가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재무적으로 최악의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편입시키는 것은 임직원의 고용과 항공안전 문제 등 고객들의 피해와 주주 및 채권단의 손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한진칼 지분의 45.23%를 보유한 KCGI-조현아 연합 등은 산업은행이 한진칼 3대 주주로 올라서면 조원태 회장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