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태일 열사 50주기 하루 전, 분진을 뒤집어 쓴 ‘새까만 얼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현대차 전북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이들은 부실한 마스크 탓에 분진을 흡입하며 일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공장 측은 “(노동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다시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노동자들은 수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12일 SNS에 얼굴 전체가 까만 분진으로 뒤덮인 노동자의 사진이 공개됐다. 마스크를 쓴 채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와 입 주변에는 온통 분진 투성이었다. 다른 사진에는 안쪽까지 새까맣게 변한 마스크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분진이 제대로 걸러지는지 의문스러운 상태였다.
금속노조 전북지부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이들은 상용차를 생산하는 공장의 하청업체에서 공장 설비를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항상 철, 유릿가루 같은 분진에 노출되기 때문에 이를 막아주는 방진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유명 제품인 3M 방진 마스크를 지급하던 회사가 최근 성능이 좋지 않은 다른 마스크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마스크를 쓰면 분진을 그대로 마시게 된다”며 이전 제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으나, 하청업체와 원청 모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수급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기존 마스크의 수량이 있는 인터넷 구매 페이지 링크까지 보내줬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현대차 전주공장 측은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 10일부터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기존에 지급하던 3M 방진 마스크를 다시 제공하고 있다”며 “사진에 나온 방진 마스크도 KSC 1등급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13일 밝혔다. 이어 “논란이 제기된 마스크와 새로 지급한 마스크의 가격은 비슷한 수준”이라며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할 마스크를 회사가 제공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장 측의 이번 입장을 인정하면서도 수량이 충분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광수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그동안 사측에서는 마스크 수급의 어려움을 이유로 교체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최근 기존 마스크를 다시 지급했다”면서 “수량이 넉넉하지 않아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판매처 주소를 보내는 등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응답이 없다가 이제야 교체에 나선 점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토로했다.
SNS에 사진이 공개된 당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노동계 인사에게 무궁화장이 추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촛불정부가 노동중심 사회를 위해 앞장서줘 고맙다. 전 열사가 뭐라고 얘기할지 궁금하다”고 하자 “전태일 열사는 ‘아직 멀었다’고 하시겠지요”라고 답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