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조사는 안 되고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밝히라는 추미애

입력 2020-11-13 12:10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2차회의에 참석, 마스크를 만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토를 지시한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해제법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자백을 강요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심야조사 등 수사기관의 피의자 인권침해를 지적해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기존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에서는 인권유린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한 시민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13일 이종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추 장관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법안 검토 지시와 관련해 “인권유린의 우려가 쏟아지는 이 법은 반헌법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며 “추 장관의 눈엣가시인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기 위한 법”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추 장관이 법무·검찰 행정 최고책임자라는 것과 판사 출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갈 데까지 간 것 같다”고 했다.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는 “추 장관이 법률 제정 지시를 철회할 것과 재발방지를 위해 인권교육을 받을 것을 권고해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추 장관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해제 법안과 관련해 “영국에서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수사권한 규제법에서는 2007년부터 암호를 풀지 못할 때 수사기관이 피의자 등을 상대로 법원에 암호해독명령허가 청구를 하고 피의자가 명령에 불응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스마트폰 등 휴대 기기의 비밀번호 해제와 관련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논란이 돼 왔었다. 애플은 지난 2015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 상태를 풀어달라는 미국 법원의 명령을 거부한 바 있다. 휴대폰 비밀번호와 관련한 미국 수사 당국과 애플의 대립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서울중앙지법이 지난해 불법도박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던 피의자에 대한 지문 및 홍채정보 채취를 위한 압수수색 검증 영장을 발부했었다. 다만 피의자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과 비밀번호를 직접 누르도록 강제하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결국 자신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것이라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비밀번호 강제 공개 법안은 추 장관 및 문재인정부의 기존 검찰 개혁 정책과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추 장관은 취임 후 수사기관의 피의자 인권침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추 장관은 지난 2월 “검찰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염두에 두고 검찰권 행사에 있어 인권이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법무부는 심야 조사와 장시간 조사를 제한하고 피의사실 공표 및 포토라인 관행을 개선하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이후 국회에서도 심야조사 및 장시간 조사 제한 등을 법무부의 검찰 개혁 성과로 여러 차례 소개했었다.

추 장관은 앞서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검찰이 3개월간 66회나 불러서 조사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여권에서도 검찰의 수사관행이 고쳐지지 않았다고 강력 비판했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피의자를 반복해 조사하는 것은 안 되고 휴대전화 비밀번호 강제 공개는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현행법상 피의자는 자기 범행과 관련된 증거를 인멸해도 처벌받지 않고 방어권은 헌법으로 보장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의 법안 검토 지시는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나 테러 사건도 아닌 일반 형사 사건과 관련해 이 같은 지시를 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추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피의자 인권 보장을 강조해왔는데 정치적인 사안에서 이런 지시를 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며 “피의자의 범죄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검사에게 책임이 있고 휴대전화 포렌식도 검사가 해야 하는 것이다. 피의자가 비밀번호를 얘기할지 여부도 묵비권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한 검사장을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로 수사하고 있다. 한 검사장은 압수 당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앞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한 검사장과 채널A 기자의 공모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한 검사장에 대한 불기소 의견을 낸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채널A 이모 기자를 지난 8월 기소했지만 한 검사장에 대한 처분은 아직 내리지 않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