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한국 방문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 방한에 대한 양쪽 의지는 확고해 시기는 향후 코로나19 상황이 얼마나 진정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내년 1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해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 시 주석이 깜짝 방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 정부는 시 주석 방한 추진에 상당히 적극적”이라며 “연내 방한과 내년에 방한하는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계속 고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한·중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고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 주석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한 공감대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 방한은 지난 8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부산을 방문했을 때 가시권에 들어오는 듯 했다. 그러나 그즈음 한국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무산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소식통은 “중국 측이 코로나19 때문에 서울을 방문하는 게 어렵다면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 정부에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 정부 이상으로 중국의 방한 의지가 확실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 내에선 방한 시기와 관련해 두 가지 시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내 방한에 초점을 맞추는 쪽에서는 아세안 정상회의가 끝나고 내년 외교 일정을 짜기 전인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가 적기라고 보고 있다. 올해를 넘기면 내년 1월 미국 대통령 취임식, 2월 중국 명절인 춘제,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가 예정돼 있어 방한 일정을 잡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에 동맹과의 관계 복원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정치적으로 시 주석 방한이 더 민감해질 수 있다느 분석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한·중 정상회담 추진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은 이날 전화 통화를 갖고 내년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조속히 만나 직접 대화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반면 연내 방한을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고 있다. 양측은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50명 이내여야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됐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외국을 국빈 방문할 때 최소 수백명의 수행단과 정·재계 인사들이 동행하는 점을 고려하면 방역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한·중 정상회담은 총 6차례 열렸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어 그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한·중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12월에는 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해 3차 회담이 이뤄졌다. 이후로도 2018년 11월 APEC 정상회의, 2019년 6월 G20 정상회의 및 12월 한·중·일 정상회의 때 양국 정상이 만났지만 시 주석 방한은 아직까지 성사되지 않았다. 시 주석 방한은 2017년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에 대한 답방 의미도 있다.
시 주석 방한이 성사되면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이후 소원해진 한·중 관계 복원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양국은 2017년 10월 말 사드 사태로 촉발된 갈등을 일단 봉인하고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자는 내용의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중국 내 반한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교류 협력에도 제한이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에선 올해 6‧25 참전 70주년을 맞아 애국주의 바람이 일면서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전쟁 관련 발언이 불매 운동으로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