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00년에 한 번 내릴 만한 비의 양을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주요 지역의 하천 제방 설계 기준을 재정비한다. 올여름 폭우 때 섬진강·낙동강 등 제방이 힘없이 무너지면서 큰 피해가 발생한 점을 고려한 대책이다. 또 홍수기에 최대 9000만t까지 빗물을 담아 놓을 수 있는 물그릇(댐)을 구축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송옥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환경부가 이달 말 이런 내용을 담은 ‘관계부처 합동 풍수해 대응 혁신방안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 위원장은 “기후변화로 증가하고 있는 홍수량을 홍수방어시설 설계에 반영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설계 기준을 재정비하는 것이 대책의 중요 포인트”라고 강조했다(국민일보 11월 12일자 12면 인터뷰 참조).
이번 대책은 올여름 역대 최장 기간(54일) 장마로 댐이 범람하고 하천 제방이 무너지는 등 대규모 홍수피해를 겪은 이후 정부가 내놓는 첫 후속 대책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올해 안에 기후위기에 대비한 새로운 홍수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향후 10년의 물 정책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대책 발표 계획을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대책은 주요 지역 하천의 홍수방어 목표를 현행 200년 빈도에서 500년 빈도로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올여름 폭우 때 힘없이 무너진 섬진강·낙동강 제방 등이 우선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섬진강의 경우 1년 강우량(1200㎜) 절반에 가까운 폭우가 불과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쏟아졌는데 장마 때 누적 강수량은 500년 만에 한 번 내릴 만한 수준이었다.
제방을 높이거나 하천 폭을 넓히는 식으로 설계빈도를 강화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설계빈도는 일정 기간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의 강수량을 해결할 수 있는 용량으로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년 빈도는 200년 중 하루 동안 기록한 최대 강수량을 막을 수 있는 홍수방어 목표를 뜻한다. 주요 지역 하천 제방을 500년 빈도로 강화하면 상당한 예산·시간 소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다목적댐 재평가를 통해 홍수조절용량을 확대하고 퇴적 등으로 줄어든 댐 저수 공간을 넓히는 방안도 대책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섬진강 댐은 내년부터 홍수기에 제한 수위를 예년보다 1.1~2.5m 낮춰 홍수조절용량을 기존 3000만t에서 최대 9000만t으로 추가 확보하게 된다. 쉽게 말해 더 많은 양의 빗물을 담아 둘 수 있도록 물그릇을 비워두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우를 동반한 장마가 아닌 극심한 가뭄이 왔을 때를 대비한 대책이 함께 강구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 밖에 하천 치수 능력을 강화를 위해 국가하천의 취약지점을 전수조사하는 내용이 대책에 담길 예정이다. 또 국가하천 정비율(79.6%)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하천 정비율(47.7%)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주요 내용으로 포함된다.
송 위원장은 “기상청·한국수자원공사·홍수통제소 간 협업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인력 교류 및 소통 확대, 기상 관측자료 공유 강화, 정례 회의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상청 중심으로 유역별 맞춤형 예보자료의 생산과 제공을 확대하고, 홍수통제소·수자원공사는 홍수 예보와 특보 및 댐 방류량 시기 결정에 이를 연계하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도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부의 대기환경정책관과 수자원정책관, 한강홍수통제소장, 기상청 예보국장과 기후과학국장, 수자원공사 이사 등 국장급 정책 협의회를 구성해 정례 회를 열고 협업을 강화할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