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잔치로 버틴 가을이었다. ‘빚투(빚 내서 투자)’에 이어 주택·전세난까지 겹치면서 지난달 은행에서 빌린 가계대출액이 10조6000억원 늘었다. 3개월 연속 큰 폭의 증가세로 최근 2년의 연간 증가 규모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올 한해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100조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2020년 10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서 지난달 말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968조5000억원이라고 11일 밝혔다. 전달보다 10조6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10월 증가 규모로는 2004년 속보 작성 이후 최대치다. 월간 증가폭만 따지면 지난 8월(11조7000억원)에 역대 두 번째다.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 대비 13조2000억원 늘었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증가폭이다.
세부 항목으로는 주택담보대출이 6조8000억원 늘었다. 이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이 3조원을 차지했다. 한은 관계자는 “전세 거래량이 줄더라도 전셋값이 상승하는 경우, 전체 대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은행들이 꾸준히 전세자금 대출을 늘리는 것도 증가세의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마이너스 대출 등 신용대출이 대부분 차지하는 기타대출도 지난 9월 3조원으로 다소 줄었다가 3조8000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공모주 등의 청약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업대출도 부쩍 늘었다. 지난달 말 잔액은 975조 2500억원으로 9조2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8조2000억원이 급증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의 금융지원, 부가가치세 납부 목적 등의 자금수요 발생 등으로 증가폭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9월 마이너스로 전환(-2조3000억원)됐던 대기업 대출은 다시 1조원 늘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주요 은행들은 한도 제한 등으로 대출 총량 관리에 본격 나서고 있다. 돈을 빌리는 입장에선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통상 연말에 가까울수록 쓸 돈이 많아지고 대출 수요도 늘어나는데, 돈 벌리기가 어려워지는 셈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 9일부터 주택관련 대출 시행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기준을 기존 100%에서 80%로 강화했다. DSR이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로 모든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오는 16일부터 한도 소진이 임박한 일부 주담대 상품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모기지신용보험(MCI)’과 ‘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 등이다. 우리은행도 같은 이유로 MCI, MCG 대출을 연말까지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임대인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경우 등 일부 경우에 한해 전세자금대출도 중단했다. 국민·신한은행은 앞서 일부 대출의 DSR 기준을 조정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