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에 오셨을 때 ‘수원이 이렇게 강하다’는 걸 보여드리겠다. 수원 팬의 자부심을 살리겠다.”
수원 삼성의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박건하(49) 감독의 표정은 리그가 진행 중이던 때보다 편안했다. 강등 위기에서 팀을 구해낸 데 이어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 구상에 돌입한 차였다. 과거의 숱한 영광 덕에 어느 팀보다 팬들의 기대치가 높은 수원이라 부담될 법도 하지만, 그는 팀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고민을 어느 정도 마쳐놓은 듯했다.
박 감독은 11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원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시즌 구상과 아직 남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준비 상황 등을 밝혔다. 이번 회견은 박 감독 부임 당시 급박한 팀 상황 탓에 열지 못했던 취임 기자회견의 성격도 있었다. 박 감독은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수원에서 보내며 팀의 전성기를 함께 한 ‘리얼블루’(수원 구단의 상징적인 인물에게 붙는 별칭)다.
박 감독의 부임 전까지 수원은 굴욕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리그 개막전인 전북 현대전에서부터 일방적으로 몰린 끝에 영패를 당했다. 경기력이 답답했던 건 물론이고 결과도 내놓지 못해 박 감독의 부임 시점에는 리그 최하위 근처로 떨어졌다. 지난 시즌 우승했던 FA컵에서도 상대적 약체인 성남 FC에게 8강에서 덜미를 잡히며 미끄러졌다. 다행히 박 감독의 부임 뒤 팀이 반전하며 위기를 벗어났지만 수원 팬들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시즌이었다.
실망해 등을 돌린 팬들에게 박 감독이 내놓으려 하는 축구는 ‘다이나믹’한 축구다. 박 감독은 “어떤 전술이 됐건 조직적 압박을 우선으로 하려 한다. 또 빌드업을 많이 하기보다 더 공격적인 전개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빠르게 공을 내보내고 재차 빠르게 공을 뺏어서 상대를 힘들게 만드는 축구를 선수들에게 요구하고 있다”면서 “팬들이 봤을 때도 다이나믹하고 빠른, 강한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목표로 하는 빠른 축구를 위해 어린 선수들을 더 기용할 계획도 밝혔다. 22일부터 카타르에서 치를 ACL에 준프로 계약을 맺은 신예 미드필더 정상빈과 손호준, 강현묵과 골키퍼 안찬기를 데려가는 것도 다음 시즌을 내다본 계획이다. 다만 박 감독은 이 과정에서 주장이자 베테랑 염기훈의 출전시간이 줄어든 데 대해 “조직적이고 빠른, 활동량 많은 축구를 원하다보니 전만큼 많이 기용하지 못했다”면서 “묵묵히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는 선수다. 다음 시즌에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내년 시즌 상위 파이널A 진출을 우선 목표로 잡았다. 일단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 뒤 ACL 재진출까지 노린다는 각오다. 그는 “제 선수시절과 선수 면면이나 투자 면면을 비교하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좋았던 부분을 재건하기 위해 임무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가 왔다고 바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위기에 강했던 ‘수원 정신’을 얼마만큼 선수들과 만들어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원 출신으로서 항상 수원 감독이 되는 꿈을 꿔왔다.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기에 책임감과 부담감도 컸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잔류한 일 자체가 스스로에게도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낸 것이라 다행스럽다”면서 “제 할 일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화성=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