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아이들이 속마음을 표현해주기를 원한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막상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부모는 교정하려하거나, 아이가 부모를 이기려 한다며 화를 낸다. 그럴 때 아이는 속마음을 표현하면 야단을 맞거나 긴 시간 훈계를 들어야 한다고 학습하면서 부모에게 솔직한 감정 표현을 피하게 되고,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모르겠다며 불안해진다.
여중생 N은 동생을 몹시 미워하고 질투한다. 때로는 부모에게도 불만이 많은 듯하다.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N : 엄마는 늘 동생 편만 들잖아요. 정말 그렇게 보여요. 그러니 엄마는 동생만 좋아하고 나는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는 나를 자식으로 생각하기는 해요? 그냥 말썽꾸러기, 애물단지로 생각하지 않나요?.
엄마 :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엄마가 너보다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느꼈다면. 만약 엄마 마음에서 네 자리가 더 이상 없다고 느꼈다면 내가 내 사랑을 너한테 보여주질 못했나 보구나. 정말 미안하다.
N : 아마 자식이니 가끔은 날 사랑하겠죠. 하지만 전 그걸 별로 느끼질 못하겠어요.
엄마 : 그렇다면 내 사랑이 너한테는 별로였구나. 네가 엄마의 사랑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엄마의 사랑에 의심이 들지 않도록 내가 분명하게 표현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구나.
N : 엄마는 왜 동생한테는 맨날 ‘해도 돼’ ‘괜찮아’라고 말하고, 나한테는 ‘안 돼’라고만 해요? 동생에게 허락하는 것도 나한테는 늘 안 된다고만 하잖아요....
엄마 : 엄마가 그럴 때는 너희 각자에게 가장 좋은 걸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너희 둘은 서로 나이가 다르니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엄마가 너한테만 ‘안 돼’라고 한 것처럼 보였다면, 대부분의 사랑이 동생에게만 간다고 네가 생각했던 게 무리가 아니겠구나.
N : 나한테는 그렇게 보였어요.
엄마 : 용기를 내서 엄마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엄마가 고민해 볼게. 내가 ‘안 돼’라고 얘기할 때도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게.... 엄마 마음 속에는 네 동생 자리만큼 커다란 너만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네가 느끼고 볼 수 있을지, 나랑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엄마는 아이의 감정 표현에 어떤 판단을 하거나 진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었다. 아이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 감정은 언제나 정당하다. 사실 엄마가 어린 동생에게는 N보다 놀이 시간도 더 허용하고, 금지하는 것이 더 적었을 수 있다. 그런 이유가 있었을 지라도 엄마의 어떤 변명이나 해명은 방해가 될 뿐이다. 있는 그대로 딸의 감정을 ‘수용’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헌데 ‘구나체’ 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감정을 읽어주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니 ‘화가 났구나’ ‘슬프구나’ ‘속상하구나’ 하는 식의 ‘구나’로 끝나는 말이 중요함을 강조한 나머지 진정성 없이 기계인 말로 공감을 표현 할 때 생기는 부작용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사실 모든 소통에는 언어적인 내용보다는 비언어적인 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즉 대화 시에는 말의 표현 뿐 아니라 표정, 목소리 톤, 타이밍, 리듬, 제스처 등을 통해 서로가 정서의 톤을 공유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AI와 대화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의원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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