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 중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게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했지만 스가 총리가 난색을 보였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이어 한·일 관계의 새 방향성을 설정하자는 취지지만,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 문제로 대립 중인 양국 관계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11일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박 원장은 전날 오후 스가 총리를 예방해 이같이 제안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함께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 표명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 발전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향한 양국 국민의 협력을 언급하기도 했다.
마이니치는 박 원장의 새 한·일 공동선언 제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내년 7월 개최되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측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마이니치에 “선언 때문에 한·일 사이의 현안이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 현실적이지 않다”며 제안을 평가절하했다. 아사히도 “전 징용공(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새 한·일 공동선언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부정적인 평가를 전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위배된다며 한국 측이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스가 총리는 전날 박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징용 문제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계기를 한국 측이 만들라고 다시 요구했다. 교도통신은 스가 총리의 발언을 “현시점에선 (박 원장이 제안한) 새로운 선언의 검토에 난색을 보인 형태”라고 진단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