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3년의 준비 끝에 지난 9월 저장성 항저우에 야심차게 문을 연 스마트 공장이 있다. ‘빠른 코뿔소’라는 뜻의 쉰시(迅犀) 디지털 팩토리다. 이곳에는 공장 하면 떠오르는 육중한 기계와 소음이 없다. 알리바바가 보유한 방대한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과 인공지능(AI), 로봇이 어우러져 상품을 만들어내는 신개념 공장이다.
10일 방문한 쉰시 팩토리에서는 의류 생산이 한창이었다. 1층 공장에 있는 대형 화면에 주문이 뜨면 그에 맞은 원단이 선택돼 재단 파트로 넘겨진다. 로봇 팔은 원단에 그림을 그려넣고 단추와 장식 등을 단다. 사람이 했으면 한 번에 하나씩 했을 일을 로봇 팔은 최대 7개 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한다. 재단이 끝난 원단은 컨베이어벨트나 이동 로봇에 실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다. 전체 공정은 디지털로 기록되기 때문에 현장에 공장 관리자가 상주할 필요가 없었다.
천리앙 쉰시 팩토리 상품 매니저는 “4만㎡ 공장에 8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하루 2만벌에 달한다.
쉰시 팩토리는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와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수요 중심의 맞춤형 생산 서비스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타깃이다. 알리바바의 강점인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해 트렌드 추이를 파악하고, 이를 기업에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의류 산업을 출발점으로 삼은 건 알리바바 산하 온라인 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 티몰 등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알리바바 측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주문 4건 중 1건은 의류”라고 설명했다.
쉰시 팩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 수요에 따라 탄력적인 상품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 대량 주문‧대량 생산 시절에는 생산 효율이 점점 높아지다가 어느 시점에는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소량 주문‧소량 생산은 효율이 올라도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알리바바의 스마트 공장은 이런 한계를 보완해 단품 생산과 대규모 양산 모두 가능하게끔 설계됐다. 업체 입장에서는 주문량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점을 인정 받아 쉰시 팩토리는 지난 9월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글로벌 네트워크의 ‘등대 공장’으로 선정됐다.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업계 선도 기업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16년 유통‧제조‧금융‧기술‧에너지 5개 분야에서 ‘신 전략’(5신 전략)을 발표했다. 쉰시 팩토리는 신 제조 전략의 전진 기지라는 게 알리바바 측 설명이다. 알리바바 관계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2018년 상품 주문에서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75% 단축됐다”며 “최소 주문량 역시 업계 평균인 5000건에서 100건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쉰시 팩토리는 11일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제 행사를 앞두고 진행한 예약 판매에서 모든 상품을 소비자 취향에 따라 일대일 맞춤형 디자인으로 생산했다고 밝혔다. 기성 제품이 아닌 생산부터 배송까지 약 10일이 걸린다.
항저우=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