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세계적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의 ‘노란 딱지’를 달고 나온 앨범에는 한국 가곡 2편이 실려있다. 서정주 시에 김주원이 멜로디를 붙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나운영 작곡가의 ‘시편 23편’이다. DG 인터내셔널 앨범에 한국곡이 실려 세계 클래식 애호가에게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앨범 주인공은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소프라노 박혜상(32). 지난 5월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이어 한국인 두번째로 DG와 전속 계약 소식을 전한 그는 이채로운 데뷔 앨범으로 음악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10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신보 기념 간담회에서 박혜상은 “한국인으로서 뛰어난 국내 작곡가들을 알리고 한국 문화를 알린다는 책임감이 있었다”면서 “핵심은 음악적 경계를 허물고픈 내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고 설명했다.
수록곡 ‘시편 23편’ 등으로 이날 간담회를 연 박혜상은 격정적인 콜로라투라와 서정적인 리릭을 유영하는 목소리를 풍성한 감정 연기와 함께 펼쳐놓았다. 한국곡과 푸치니 ‘잔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중 ‘어서 오세요, 내 사랑’ 등 18곡을 담은 데뷔 앨범에는 빈교향악단과 지휘자 베르트랑 드 빌리가 참여했다.
‘아이 엠 헤라’(I AM HERA)라는 당찬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앨범은 그의 음악적 방향성과 삶의 철학을 두루 담고 있다. 프로그램을 10번이나 뒤집었다는 박혜상은 “앨범에 수록된 재기발랄한 아리아들은 강렬한 ‘디바’보다는 극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는 배역이 부르는 노래들”이라며 “역할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적 위로를 선사하고픈 아티스트로서의 소신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박혜상에게 ‘소신’은 ‘도전’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에 한국곡과 되도록 신선한 아리아를 고른 이유도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 아리아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포부에서였다. DG도 박혜상의 진심에 힘을 쏟았다. 박혜상은 “독일 녹음이 펜데믹으로 취소되자 DG가 발품을 팔아 오스트리아 빈에서 녹음을 성사시켰다”며 “DG도 코로나19 이후 첫 정식 녹음이어서 큰 도전이었다”고 떠올렸다.
2015년 오페랄리아 콩쿠르 2위에 오르며 유명세를 탄 박혜상은 빠르게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디바로 자리매김했다. 앞서 DG가 박혜상의 무대에 반해 3년 동안 구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DG 회장은 ‘세비야의 이발사’ 로지나 역 박혜상을 보고 “같은 작품을 수없이 봤는데 네 로지나는 정말 특별하다”며 “내가 본 오페라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가창력과 수려한 외모, 타고난 끈기에 힘입어 박혜상은 성악가들의 꿈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를 비롯해 영국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빈 슈타츠오퍼 등 유수의 무대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내년 모차르트 ‘마술피리’ 파미나 역으로 메트 주역 데뷔를 앞둔 그는 한국에서 먼저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오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에 이어 다음달 4일과 7일 첼리스트 홍진호·테너 존노 등과 세종문화회관 ‘스타즈 온 스테이지’에 오를 예정인 박혜상은 “공연 주제는 ‘위로’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며 “코로나19로 힘들지만 다시금 꽃과 나비들 사이로 뛰어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할 것”이라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