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설립자는 터키 이민자 2세 출신의 독일인 부부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이민자 사회에서는 “터키 이민자의 쾌거”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또 화이자의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이 미국 대선 이후에 전해진 것을 두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가디언은 9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오엔테크 설립자가 터키 이주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흙수저’ 출신의 우그르 사힌(55)과 외즐렘 튀레지(53) 부부라고 소개했다. 사힌은 바이오엔테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고 외즐렘 튀레지는 최고의료책임자(CMO)다. 전날 화이자는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이 90%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힌과 튀레지 부부는 1960년대 후반 독일로 건너 온 터키 이주 노동자 가정의 자녀였다. 터키 남부에서 태어난 사힌은 4살 때 부모를 따라 독일 쾰른으로 건너왔고 튀레지는 독일 태생 터키 이민 2세다. 이들은 독일의 한 대학에서 만나 2002년 결혼했다. 튀레지는 독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험실 가운을 입고 결혼식을 했고 혼인 신고를 한 뒤 곧바로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연구에 몰두했다”고 언급했다.
독일 언론들은 백신 개발 주역이 터키 이민 2세라는 소식을 전하며 독일 이민자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집중 조명했다. 베를린 지역지 타게스슈피겔은 “이들의 성공은 수십년 동안 ‘학력이 낮은 청과물 상인’ 계층쯤으로 여겨지던 독일 내 터키 이민자들에게 바치는 ‘영혼의 위로’ 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에는 약 300만명(2017년 기준)의 터키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동독과 서독의 통일 이후 터키 이민자들이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는 인식 탓에 터키계 독일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깊다.
이들 부부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백신 개발에 돌입했다. 사힌은 지난달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체적으로도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지만 배포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화이자와의 공동 개발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언론들은 화이자가 사실상 정치적 의도를 갖고 발표 시점을 대선 이후로 정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화이자는 대선 이후 백신을 발표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그렇게 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미 식품의약국(FDA)도 더 일찍 발표했어야 한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CNBC도 같은 날 “선거 전이었다면 이 뉴스는 분명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백신 개발에 성공해야 재선이 유리할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 7월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이 개발되기도 전에 화이자와 19억5000만달러(약 2조23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백신 사전 구매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화이자 측은 “발표 시점과 정치적 상황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CNN은 알버트 보울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의 말을 빌려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말에 그는 강하게 부정했다”고 보도했다. 카트린 얀센 화이자 수석 부사장 역시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돈도 받은 적이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연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측근들은 발표 시점을 두고 불만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화이자의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을 트럼프 행정부의 공(功)으로 선전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에 의해 이뤄진 민관협력으로 화이자 백신이 90%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고 언급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