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기대 이상 효과를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발표 시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당선 소식 이후로 발표 시점을 늦췄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미국 언론들은 선거에서 트럼프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화이자가 발표 시점을 일부러 대선 종료로 늦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CNBC는 9일(현지시간) “화이자가 (코로나19 백신) 임상 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는 공교롭게 바이든이 트럼프를 이겼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진 뒤 나왔다”라며 “선거 전이었다면 이 뉴스는 분명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화이자는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중인 코로나19 백신이 90%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외신들이 타이밍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화이자가 발표한 데이터는 의학 저널이 아닌 보도자료를 통해서였다는 점이다. 발표 시점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백신 개발 소식 오매불망 기다리던 트럼프
바이든 당선인이 전 국민 마스크 착용과 같은 방역과 보건의료 확대 정책을 강조한 반면 트럼프는 줄곧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조기 개발을 주장하며 낙관론을 펼쳐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워프 스피드 작전’을 통해 백신을 신속하게 접종시키는 정부 노력을 강조해왔다. 곳곳에서 봉쇄(Lock down)가 일어나고 경기가 침체되자 여기에 지친 사람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개발에 성공해야 재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감염자수가 1000만명을 넘어설 때도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 개발만을 강조했다. 선거 전날에도 제약 회사 CEO들에게 전화를 걸어 “백신이 더 빨리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백신 개발도 전에 지난 7월 화이자와 19억5000만달러(약 2조33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사전 백신 구매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충분히 트럼프 재선에 호재가 될 수 있었던 소식이었지만 대선 이후에 발표된 것을 두고 화이자 측은 “발표 시점과 정치적 상황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CNN은 알버트 보울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의 인터뷰를 전하며 “지난 일요일 실험 결과를 처음 접했지만 미국 유권자들이 대통령 후보를 선택한 이후 백신 소식을 전한 배경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말에는 강하게 부정했다(throwing cold water)”고 보도했다.
화이자 “우린 정부 돈 안 받았다” 정치적 논란에 반박
트럼프 행정부와 사실상 ‘선 긋기’에 나선 것은 화이자가 경쟁사와 달리 개발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현지시간) “화이자는 트럼프의 ‘워프 스피드 작전’에 참여하지 않고 자체 자금 2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캐서린 젠슨 화이자 부사장 역시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정부나 누구에게서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정치적 연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보울라 CEO는 지난 9월 C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돈을 지원받지 않는 점에 대해 “우리의 과학자들을 정부 관료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저 또한 화이자를 정치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화이자의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을 자신의 치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에 의해 이뤄진 민관협력으로 화이자 백신이 90%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