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받은 軍간부들… “사단장 명 거역 어려웠다”

입력 2020-11-10 10:14

“‘내가 주는 돈이니 받아도 괜찮다’는 사단장의 말을 거스르기 어려웠습니다.”

민간 사업가로부터 돈봉투를 받고 징계 처분을 받은 전·현직 대령들의 항변이었다. 전직 대령 A씨 등은 2018년 11월 인천의 한 식당에서 열린 사단장의 이임 송별회에 참석했다가 식당 주인 B씨에게서 “제 마음이니 가족과 함께 식사나 하라”는 말과 함께 현금 3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B씨는 사단장의 친구였다. A씨 등은 군인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도군단 사령부 징계위원회에서 견책 처분을 받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A씨 등은 “사단장이 주는 격려금으로 알았고, 명에 따라 받은 것”이라며 견책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업가 B씨는 자신들의 직무와 관련성이 없고 청탁을 받은 사실도 없다고 호소했다. 받은 액수도 크지 않아 품위유지 위반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안종화)는 A씨 등이 수도군단 사령부 군단장을 상대로 제기한 견책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업가 B씨가 사단장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임의로 봉투를 준비했고, 이를 사단장에게 먼저 건넨 뒤 A씨 등에게 나눠주도록 한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같은 정황을 근거로 “A씨 등은 금원의 출처가 B씨임을 분명히 인지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격려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기 위해선 봉투에는 격려금 액수가 적힌 증서만 담은 뒤 은행계좌로 입금 받았어야 했고, 민간인의 기부금품을 받으려면 기부금품심사위원회 절차를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단장의 명 때문에 받았다는 항변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당하지 못한 금원을 받으라는 상관의 명에 따랐다고 그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며 “그 자리에서 일단 받았더라도, 사후에 돌려줄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A씨 등은 5개월이 지나서야 B씨에게 돈을 돌려줬다. 사단장에 대한 비위 감찰이 시작된 이후였다.

B씨가 직무관련자가 아니란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가 A씨 등이 속한 관내의 민간사업자라는 점을 근거로 사업 확장을 위해 협조를 기대할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여러 정황을 종합한 뒤 “국민으로 하여금 공직자 직무의 청렴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