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만나고 싶다면, 연극 ‘신의 아그네스’

입력 2020-11-09 17:32
연극 '신의 아그네스' 박해미와 이지혜. 연합뉴스


서울 예술의전당에 가면 상연 때마다 화제를 흩뿌렸던 연극을 만날 수 있다. 지난 7일부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오르고 있는 ‘신의 아그네스’다. 1983년 국내 초연 때부터 스타 배우들이 올랐던 ‘신의 아그네스’ 이번 무대에는 20년 만의 정통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 박해미가 오른다.

소재부터 도발적인 ‘신의 아그네스’는 수녀원에서 벌어진 영아 살해사건을 둘러싼 일을 그린 작품이다. 자신의 아기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수녀 아그네스와 처벌을 막으려 애쓰는 수녀원 미리엄 원장 수녀, 진실을 파악하러 온 정신과 의사 닥터 리빙스턴이 등장인물이다. 이들 세 명은 수녀원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을 두고 2시간 동안 치밀한 심리극을 펼친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딸, 아내로 살아가는 여성의 삶도 곳곳에 녹아든 이 여성극은 1979년 미국 작가 존 필미어가 썼다. 브로드웨이를 달군 이후 국내에 소개돼 스타 배우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 윤석화·윤소정(1983), 신애라(1992), 김혜수(1998), 전미도(2008) 등이 이 작품에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올해 ‘신의 아그네스’에는 배우 박해미와 이수미, 이지혜가 단일 캐스팅으로 호흡을 맞춘다. 박해미는 닥터 리빙스턴으로, 베테랑 이수미는 원장 수녀를 연기한다. 올해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받은 이지혜는 역대 아그네스들을 이어 순수와 광기가 혼재하는 수녀를 펼쳐 보인다.

지난 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막 시연에서 이들 세 배우는 안정적인 연기로 몰입감을 선사했다. 덕분에 연극으로는 긴 편인 2시간가량 러닝타임도 빠르게 지나갔다. 시연 직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지친 기색이 보일 만큼 극은 많은 대사와 격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무대 연기·취소가 반복됐던 터라 배우들도 이번 무대가 행복한 듯 보였다. 이수미는 이날 간담회에서 “공연이 오를 수 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했고, 이지혜는 “올해 출연하기로 한 공연이 많이 취소됐는데 공연을 선보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아그네스와 원장 수녀. 연합뉴스


방송과 뮤지컬을 넘어 20년 만에 정극 무대로 보폭을 넓힌 박해미의 도전이 눈길을 끈다. 이야기의 힘에 매료됐다는 박해미는 “20년 전 ‘햄릿’으로 연극에 대한 매력을 처음 느꼈는데 이 작품을 접하고 나서 인생의 마지막 도전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만났을 때 느낌”이라며 “이 작품도 ‘맘마미아’와 마찬가지로 내가 주체적으로 끌고 갈 수 있어 매력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22년 만에 다시 ‘신의 아그네스’ 연출을 맡은 윤우영 연출가는 토월극장의 큰 무대와 조명을 결합해 한층 장엄한 무대를 구현해냈다. 또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려고 과거 동명 작품들이 유지해온 캐릭터 전형성을 탈피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윤 연출가는 “이상적인 닥터, 권위적인 수녀가 아니라 평범한 시골 사람의 이미지로 표현됐으면 했다. 아그네스도 마냥 이상한 인물이기보다는 천진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면서 “세 인물 모두 주변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연은 29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