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9일 “범야권의 공동 노력 없이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견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면서 야권 재편을 또 촉구했다. 야권 재편론의 명분은 이대로는 야권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제1야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3석 소수정당인 국민의당이 야권 재편론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끌어올리려는 포석도 숨어 있다. 국민의힘에선 “안 대표가 야권 혁신론을 내세워 새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것 아니냐”며 저의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단순히 반문(반문재인)연대, 반민주당 연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변화와 혁신의 비전을 생산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개혁연대, 미래연대, 국민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지난 6일 “야권 재편으로 새로운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신이 꺼낸 야권 재편론에 관해 이같이 설명했다.
안 대표는 ‘야권의 혁신 플랫폼’을 제안한 데 대해 “더 이상 이대로는 야권의 장래도, 대한민국의 장래도 없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용적 개혁정치의 길을 야권이 선제적으로 만들고 앞장서야 한다”며 “그럴 때만이 정권교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거대 여당과 국민의힘 간 대결 구도로는 정권 교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미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안 대표의 야권 재편론에 관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공감하는 반응을 듣고 있고 이번 주에 이와 관련된 구체적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이 어느 한 정치인이 밖에서 무슨 소리를 한다고 거기에 휩쓸리거나 할 정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된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론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라’는 게 김 위원장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일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안철수 얘기에 대해 동조하느냐 안 하느냐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안 대표와 연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신당 창당 수준의 야권 재편론에는 물음표가 달려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어떤 과정을 거치든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늘 주장해왔던 바”라면서도 “안 대표가 주장하는 새로운 창당이나 혁신형 플랫폼이 가능한 것인지 회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합쳐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는 좀 더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고 부연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보선 승리를 위해선 가능한 한 힘을 모아야 하지만 신당 창당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당 일각에선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안 대표가 주장한 야권 재편론은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이라며 화살을 김 위원장으로 돌렸다. 장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쇄당정치(鎖黨政治)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자, 부질없는 자존심일 뿐”이라며 “김 위원장의 쇄당정치는 야권의 위기를 심화시켜 민주당의 100년 집권을 허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