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도 근절도 마땅찮은 중고 사기… 아기엄마 사칭까지

입력 2020-11-09 07:05 수정 2020-11-09 07:05

20대 직장인 박모씨는 지난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낭패를 봤다. 30만원 넘는 돈을 주고 배송받은 택배 상자에는 냄새나는 옷가지만 잔뜩 들어있었다. 박씨는 8일 “택배 상자를 열어보고 난 후에도 헌옷을 완충재로 썼겠지라고 생각했다. 진짜 헌옷만 보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허탈해 했다. 판매자로부터 운송장 번호가 적힌 ‘인증샷’까지 받은 터라 사기일 줄은 전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박씨는 “2017년부터 중고거래를 100번 넘게 했는데 내가 속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경찰 신고 끝에 10개월 만에 범인을 잡은 박씨는 또 한 번 허탈한 상황을 마주했다. 사기꾼이 벌금형만 선고받은 채 사법처리가 끝났기 때문이다. 박씨는 “민사소송을 하지 않으면 돈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한다. 사기꾼은 돈도 꿀꺽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벌금을 내거나 짧게 징역 살면서 앞으로도 그렇게 사기치면서 살지 않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넷을 통한 중고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사기범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구매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린아이의 엄마를 사칭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핑계를 대면서 비대면 거래를 유도하기도 한다. 안전결제를 가장한 피싱 사기도 적지 않다.

A씨는 지난 9월 당근마켓에서 ‘엄마’를 사칭한 사기범에게 속을 뻔했다. 시세보다 30만원가량 싸게 아이폰과 맥북 등을 ‘급처’로 올린 판매자는 프로필에 ‘OO맘’이라고 별명을 설정해 놓고 30대로 보이는 아기엄마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아기 때문에 밖에 외출이 어려우니 안전결제를 하자고 A씨를 유도했다. 수상한 상황이 의심돼 A씨가 꼬치꼬치 캐묻자 판매자는 돌연 잠적했다. A씨는 “요즘 코로나19를 이유로 무조건 비대면거래를 유도하는 사람이 많은데 진짜 감염 우려 때문인지 사기를 치기 위해서인지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결국 구매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행 전자상거래 관련 법(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고거래 플랫폼은 통신판매중개자로 분류돼 소비자 피해에 대한 직접 배상 책임이 없다. 이 때문에 소비자 사이에선 중고거래 플랫폼이 사기 피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가짜 제품으로 사기를 당했다”며 고객센터에 신고하니 ‘정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관련 서류를 첨부해 달라’는 답변을 받은 소비자도 있다고 한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 관계자는 “우리는 신고 접수가 들어왔을 때 그 사람이 거래를 못하도록 막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결국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며 “채팅방이나 안전결제 장치를 만들어 뒀는데도 이용자가 개인계좌를 이용해 결제하면 우리가 어떻게 다 책임을 지느냐”고 설명했다.

구매자들도 사기를 친 판매자의 신상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하기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고가의 이어폰을 사기당해 판매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계좌번호 등을 관련 커뮤니티에 공개한 20대 여성 신모씨는 “나한테 사기를 쳤으니 당신도 당해보라는 심정으로 올렸다”며 “검색할 때 뭐라도 걸려야 다른 피해를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중고거래 사기꾼들이 가명을 사용하고, 휴대전화와 계좌번호 등을 계속 바꾸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중고거래 물품사기에 금전 지급정지 방안을 도입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논의와 입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