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총수들이 지난주 비공개 회동을 했다. 지난 9월에 이어 약 두 달 만이다. 친목 성격의 모임이지만 미국 대선 결과 등 현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40·50대 ‘젊은 총수’들의 잦은 회동을 두고 재계에선 “견제가 심했던 과거와 달리 주요 대기업이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만찬을 가졌다. 외부인 접근이 어려운 별도의 장소에서 이뤄진 이날 만찬은 오후 7시 전부터 시작돼 밤 11시를 넘긴 시간까지 이어졌다. 이번 모임은 최 회장이 주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특별한 현안보다는 지난번 비공개 만남의 ‘애프터 미팅(After Meeting)’ 성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참석자들은 부친상을 치른 이 부회장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업적을 기린 것으로 전해졌다. 자연스레 지난달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에 대한 축하와 덕담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긴 시간 대화가 이어지면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우리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경제 3법’ 등 정책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차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에선 비공개 회동 정례화 가능성에 대한 관측도 나온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개별 ‘배터리 회동’ 끝에 정 회장 주도로 회동을 한 데 이어 최 회장이 다른 총수들을 초대한 것으로 볼 때 비공개 만남이 정례화된 것으로 보인다”며 “총수들이 격의 없이 만나 업계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자주 갖기로 한 것 같다”고 했다.
대화의 기류는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6월 한국을 찾은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5대 그룹 총수의 승지원 회동을 주선했다. 4대 기업 총수는 지난 5월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매개로 공개적으로도 만나고 있다.
주요 그룹 총수가 비공식 모임 통해 친분을 쌓고 현안을 논의하는 데 긍정적 평가가 많다. 1·2세대 총수들과 달리 3·4세 젊은 경영인들은 ‘융복합’이 대세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엔 협력할 분야가 많고 세대적 공감대도 훨씬 넓기 때문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 회장이 연배나 경험 면에서 ‘재계 맏형’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젊은 총수들이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공동 대응한다면 우리 산업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민지 김성훈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