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미·중관계… “민주주의·인권·법치 앞세워 中 압박”

입력 2020-11-08 11:55 수정 2020-11-08 12:54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다.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꺾고 미국의 46대 대통령이 됐다.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전방위로 악화된 미·중 관계가 조 바이든 행정부 시대 들어 급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입장이 거의 유일하게 일치한 분야가 대중 정책이었다.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미국의 중국 압박 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거란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관세 부과와 기술기업 제재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이에 비해 바이든 당선인은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법치라는 보다 근본적인 가치를 앞세워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포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더 까다로운 상대”
일단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모든 면에서 예측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는 지난 4년간 싸워본 트럼프 대통령보다 직접 상대해본 적 없는 바이든 당선인이 더 예측불가능한 인물이다.

베이징 외교소식통은 8일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거칠게 해도 뒤로는 협상 여지가 있다는 걸 파악했다”며 “반면 바이든 당선인은 태도는 젠틀하지만 협상에서 우회로를 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아내 질 바이든(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월밍턴에서 열린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이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정책을 보면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보장, 대만관계법 지원, 중국의 인권탄압 대응 등이 명시돼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중 압박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는 셈이다. 특히 인권은 중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때 침묵하는 등 인권 문제를 중국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홍콩, 신장위구르자치구 등의 인권 문제를 그 자체로 다룰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 때와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 대 중국의 일대일 대결 구도가 아닌 중국 대 다자간 견제 구도가 형성될 거라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통적인 동맹국들과 관계를 복원하고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제도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이 7일(현지시간)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의사당 앞에서 "트럼프, 당신은 해고야"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이미 미·중 갈등 장기전 대비 태세에 들어갔다. 중국은 지난달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에서 ‘내수 강화’와 ‘기술 자립’을 근간으로 한 발전 전략을 채택했다. 미국 변수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내부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미국 민주당에 대한 경계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최근 칼럼에서 “뉴욕타임스, CNN 등 미국의 주류 언론이 모두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 세력임에도 그들이 중국을 향해 얼마나 악랄한 태도를 보여왔는지 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코로나·북핵 협력 가능성
그렇다고 미·중 협력 분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 당선자는 기후변화, 코로나19 확산, 북핵 문제 대응에 있어 중국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북핵 문제는 한반도 운명과 직결된 문제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처럼 정치 이벤트식의 북핵 협상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 정상간 핵 담판은 북핵 문제 해결에 큰 전기가 되는 듯 했지만 실무협상 단계로 내려오면 본절적인 입장차로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렇다고 바이든 당선인이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되풀이할 가능성도 낮다. 전략적 인내는 북한이 스스로 협상 테이블에 나올 때까지 관여하지 않고 최대한의 대북 압박을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북한에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 당선인은 두 방식의 장단점을 분석해 적절한 개입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스캔들’처럼 될라…침묵하는 중국
중국 정부는 미 대선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4년 전 미 대선 때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렸던 러시아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지켜본 중국으로선 당연한 선택이다. 선거 불복 움직임을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 책임을 중국과 코로나19에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내년 1월 미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기 전까지 미국과의 어떠한 대립도 피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각 전구에 ‘미국을 자극하지 말고 미국과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떠한 빌미도 주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