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2는 팀 쿡 체제의 애플에서 가장 큰 디자인 변화를 시도했다. 아이폰6부터 이어온 둥근 테두리를 버리고 각진 테두리 디자인으로 회귀했다. 고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아이폰을 추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애플 마니아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아이폰12 시리즈는 잡스가 마지막으로 행사를 통해 소개했던 아이폰4의 외형과 닮아있다. 아이폰4는 테두리를 스테인리스로 두르고 후면은 유리 소재를 적용하는 등 당시 스마트폰에서 볼 수 없던 디자인과 소재로 소비자를 끌어당겼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이폰12는 손에 쥐는 것만으로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카메라 업그레이드 이외에는 전작에 비해 크게 향상된 것은 없지만 갖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걸 아이폰이 주는 ‘감성’이라고 정의한다면 수긍할 만하다.
스펙상으로는 이걸 사야 할 명분을 찾지 못하겠는데, 막상 만져보면 갖고 싶은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다 센서가 만드는 큰 차이
아이폰12와 아이폰12 프로의 차이는 초광각 카메라와 라이다 센서다. 테두리가 알루미늄(아이폰12)이나 스테인리스(아이폰12 프로)냐 차이도 있지만, 그건 기능적인 부분이 아니라 심미적인 영역이니 차치하도록 하자.
초광각 카메라의 활용도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라이다 센서가 주는 차이는 제법 커서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라이다 센서는 거리를 측정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피사체에 레이저를 쏘고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거리를 재는 방식이다. 주로 자율주행차 등에 필요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애플은 라이다 센서를 카메라 기능 업그레이드에 사용했다. 라이다 센서 덕분에 아이폰12 프로는 인물모드로 촬영하면 완성도가 이전 제품보다 훨씬 좋아졌다. 라이다 센서가 피사체와 배경을 잘 구분해 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A14 바이오닉의 연산 능력이 더해져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결과물을 보여준다. 사람 얼굴뿐만 아니라 사물과 배경을 구분하는 것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HDR 기능이 무척 좋아졌다. 보통 사진을 찍을 때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차이가 크면 둘 중 하나는 희생을 하게 된다. 밝은 부분을 밝게 하면서, 어두운 부분도 어둡게 하는 건 사진 전문가가 좋은 장비를 가지고 정교하게 조작할 때나 가능하다.
그런데 아이폰12 프로는 촬영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이걸 훌륭하게 해낸다. 햇볕이 쨍한 날 실내에서 사진을 찍으면 실내는 실내대로, 외부는 외부대로 선명한 사진이 나온다.
애플을 이걸 ‘스마트 HDR 3’이라고 명명했다. 명부, 암부, 윤곽을 자동으로 다듬어주고 피사체와 배경의 디테일을 살리면서 블랙은 블랙대로 짙은 톤을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사진의 전반적인 색감은 기존 아이폰에 비해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이다. 예전 아이폰이 특유의 색감으로 사랑받긴 했지만, 일부는 너무 노란톤으로 나온다고 불만이 있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번 변화가 나쁘지는 않은 느낌이다.
라이다 센서, A14 바이오닉 등이 결합해 야간 사진도 개선된 모습이다. 특히 야간에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이전보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에서 ‘옥에 티’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고스트’ 현상이다. 야간에 가로등 불빛 같은 게 반사돼 사진에 찍히는 현상인데, 지난해 아이폰11에서도 문제가 됐었지만 이번에 개선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라이다 센서 덕분에 ‘측정’ 앱을 이용해 실제 거리를 잴 수도 있다. 앱을 실행시키고 시작하는 점과 끝나는 점을 지정하면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알려준다. 가구 배치를 위해 집안 거리를 재거나 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애초에 애플은 아이패드 프로에 라이다 센서를 넣어 증강현실(AR)용으로 사용해 왔다.
없고, 빠진 것도 많은 아이폰12 프로
만족스러운 사진 기능을 빼면 아이폰12는 지적할 것도 꽤 많다.
우선 웬만한 중국 업체들도 다 도입한 120㎐ 주사율을 뺀 건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애플도 아이패드 프로에 120㎐ ‘프로모션’ 기능을 넣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폰12에 빠진 건 어떤 이유로든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최소한 프로 라인업에는 120㎐가 들어갔어야 했다.
충전기와 이어폰을 뺀 것은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애플이 환경 문제를 정말 생각한다면 없애야 할 건 라이트닝 케이블이 우선이다. 모든 스마트폰 업체가 표준으로 USB-C 포트를 쓰는데 애플만 독자 규격인 라이트닝을 쓴다. 애플도 아이패드 프로에는 USB-C를 채택하고 있다. 못해서 안 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또 충전기가 빠지면서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충전 사고에 책임 소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기본으로 딸려 나오는 충전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충전기를 이용할 건지는 소비자의 선택사항이 됐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가리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
아이폰12 프로는 아이폰 최초로 5G를 도입했다. 하지만 5G 품질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5G 망을 찾느라 힘을 많이 써서인지, 아이폰12 프로 배터리 운용시간은 전작에 비해 길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