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을 떠돌던 유기견 대문이, 유기견이면서 장애가 있는 대복이와 대평이, 화장품 회사에서 구조된 실험견 대길이. 우리 강아지들은 다들 사연이 있어요.”
이날만큼은 래퍼가 아니라 유기견들의 대부였다. 지난 2일, 힙합 아티스트 매드클라운이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를 찾았다. 그가 과거 버려진 개를 4마리나 입양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찐팬 중에도 극소수. 힙합 아티스트를 불러 놓고 힙합을 묻지 않는 생소한 인터뷰지만 유기견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빛은 반짝였다.
인터뷰 도중 매드클라운은 아련한 듯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양희은의 ‘백구’였다.
그가 입양한 4마리 중 시골 집 어머니 곁을 지키는 건 이제 대문이 한 마리뿐이다. 다른 3마리는 마당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귀엽고 예쁜 건 잠깐이다. 친구 같고 편한 관계가 좋다”는 그는 유기동물 입양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전한다며 ‘동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인을 남겼다.
버려진 개들을 입양한 이유는
-래퍼가 버림받은 동물들의 대부라니, 의외다
“어릴 적부터 개를 좋아했다. 아주 어릴 적 키우던 다롱이라는 개가 있었는데 끝까지 못 키우고 다른 곳에 보냈다. 그때 슬프고 힘들었고 지금도 항상 마음속에 남아있다.”
-4마리나 입양했던데 혼자 돌보긴 어려웠겠다
“고향 집이 경기도 용인에 있다. 논밭밖에 없는 시골인데 어머니 역시 딱한 개들을 지나치지 못하는 분이셨다. 게다가 입양한 개들이 각자 사연이 있다.”
-4마리 전부 유기견이라던데
“그렇지는 않다. 유기견은 대문이, 대평이, 대복이 세 마리다. 먼저 대문이는 사촌 형이 서울 동대문에서 구조한 아이다. 위험하게 건널목 한복판을 오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이 받아들였다. 대평이는 어머니가 차를 타고 가다가 구조한 애다. 덩치가 되게 작은데, 동네 개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었다. 발견 당시에 피투성이에 한쪽 눈이 없었다. 세 번째로 대복이라는 페키니즈가 있다. 얘는 2000년대 초반쯤 인터넷 유기견 카페에서 데려왔다. 평생 뒷다리를 절뚝거렸는데, 구조한 사람은 ‘누가 학대하고 버린 것 같다’고 했다.”
-남은 한 마리는 유기견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비글 견종인 대길이다. 얘는 어느 화장품 회사의 실험견이었다. 귀를 뒤집어보면 무슨 코드 같은 게 박혀 있어서 볼 때마다 화가 났다. 거기 직원이 두고 볼 수 없다길래 애를 데려왔다.”
-4마리 모두 잘 지내는지
“4마리 중 대문이만 남았다. 다른 친구들은 행복하게 살다가 늙어서 죽었다. 다들 집 마당에 묻혀 있다. 이후 홀로 남은 대문이는 5마리의 새끼를 낳은 엄마가 됐다.”
-어리고 귀여운 애들을 키우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장애가 있는 유기견 등을 데려다가 키운 이유는
“귀여운 것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예쁜 거, 잘생긴 건 잠깐이니까. 사람이든 동물이든 관계를 맺을 때 외모만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같이 있으면 편하고 친구 같은 관계가 좋다.”
-4마리가 함께 살았으니 고향 집은 그야말로 ‘개판’이었겠다
“다행히 고향집은 마당이 넓다. 밥 주고 청소하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입양한 애들이 싸운 일이 있다. 학대를 당했던 대복이가 대길이에게 까불다가 한쪽 눈을 물려서 실명됐다. 대길이가 진짜 순한데…. 대복이가 대길이를 계속 괴롭혔다. 참던 대길이가 폭발한 것이다.”
-학대받은 동물의 마음을 열기 어려웠을 것 같다
“맞다. 대평이는 정말 그런 게 있었다. 사람에겐 아니지만 다른 개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만큼 공격을 받은 기억 때문인지 조용하고 몸을 사렸다. 대복이도 사람에게 학대당한 경험이 있어서 초반엔 우울했다. 반면에 실험견 대길이는 처음부터 발랄했다. 비글은 워낙에 성격이 낙천적이지 않나. 천진난만하고 장난 좋아하고…. 실험실에서의 고생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골 집에 있는 4마리 말고, 본인 집에 검은 치와와가 한 마리 있던데. 매드클라운 닮은 꼴로 유명하다
“치와와의 이름은 미농이다. 아내가 결혼 전부터 키우던 아이인데 유기견으로 잘못 알려졌더라. 나와 함께 산 지 2년 됐나? 되게 특이한 강아지다. 표정과 행동이 되게 시크(무심)하다. 원래 치와와는 그렇지 않은데.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동물에 대한 노래는 없던데. 뮤직 비디오(마미손의 영상 ‘별의 노래’ 중)에만 시골 개가 등장하고
“마미손은 제가 잘 모르는 분이고. 그런데 제가 되게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김민기 선생님의 ‘백구’라는 노래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이런 노래인데 꼭 들어 보라. 눈물이 난다.”
평생 함께할 사이…불쌍하다고 입양하면 안 돼요
-유기견은 건강·성격상 문제가 있어서 버림받았다고들 생각하는데
“개들은 장애를 입었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는다. ‘다리 절고 눈 하나 없는 내 팔자, 암담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리가 불편한 대복이, 눈을 잃은 대평이는 성격이 조용했고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장애와 상관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갔고, 키우는 처지에서도 전혀 어려운 점이 없었다.”
-유기견을 입양하려는 분들에게 해줄 말은
“어설픈 동정심 때문에 입양하면 안 된다고 본다. 조금이라도 고민된다면 입양하지 않는 게 낫다. 고(故) 신영복 교수가 남긴 말씀인데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고 했다. 한쪽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보단 서로 사랑하는 것이 좋은 관계라는 말씀 같다. 평생을 함께해야 하니까 입양은 동정심에서 할 일이 아니다.”
뮤지션 매드클라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최근 발라드 앨범 ‘0’의 작사를 맡았다. 팬들은 매드클라운의 심성이 여리다고들 하는데, 발라드가 원래 돌아갈 곳이었나
“스스로 여리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20대 초중반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젠 무뎌졌다.”
-음악가가 무뎌진다는 건 어떤 것인가
“아티스트로서 안테나가 닳아가는 느낌이랄까. 계속 감성의 날을 세우려고 노력하는데,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없으니 필연적인 것 같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려고 한다. 발라드 앨범 작사도 그런 노력이다. 대중에게 뻔하게 보이고 싶지 않고, 언어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었다.”
-신규 앨범 ‘0’에서 한 구절도 부르지 않았던데
“일부러 1도 부르지 않았다. 철저하게 작사에 집중하고 싶었다.”
-가사에 지질한 사랑 이야기가 많더라. 본인의 경험이 들어있나
“항상 가사 쓸 때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일반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수록곡 ‘낡은 노래방’의 가사가 와닿았다. ‘다 끝날 것 같을 땐 늘 / 또다시 추가된 시간처럼 / 떠나지 못하고 / 그렇게 우리는 / 시간을 끌었나 봐’ 아쉬움에 이별하지 못하는 연인의 모습을 담았는데. 이 가사도 경험담인가
“끝날 때쯤 시간을 찔끔찔끔 추가해주는 노래방 개념에서 시작된 노래는 맞는데 경험담은 아니다. 저는 노래방은 거의 가본 적이 없다.”
-‘본 계정(활동명 매드클라운)보다 부계정(활동명 마미손)이 잘 나가는 뮤지션’이라고들 하던데
“부계정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고. 매드클라운의 활동 계획이라고 하면 제가 직접 가창하는 앨범이 내년 초쯤 나올 예정이다. 저의 1집 앨범(Anything Goes)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더라. 제가 음악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감정, 감수성은 그 앨범에서 시작된 건 맞다. 그런데 사람은 변한다. 저도 많이 변했고, 똑같은 것만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때의 감성은 지금의 저에게도 근본이 되는 감성이다. 다음 앨범은 1집처럼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지 않을까, 구상하고 있다.”
-오랜 팬들이 준 질문이다. 소울컴퍼니 복귀 계획은 없나
“그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한다라…. 의미 있던 시절이지만 지나간 것이기에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가끔 이런 생각은 했다. 이벤트성으로 다시 모여서 노래하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형님들 특히 콰이엇형 같은 경우는 지나간 것에 있어서 시크한 사람이다. 다들 딱히 아련해 하거나 연연하지 않는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김지훈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