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 대선을 장식한 5번의 화룡점정을 돌아보다

입력 2020-11-07 00:05 수정 2020-11-07 00: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이 맞붙은 ‘빅 이벤트’인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는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만큼 이번 미 대선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판세를 가늠하기 힘들게 했다.

올해 미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5가지 사건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감염과 대선 후보 간 TV토론,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BLM(Black Lives Matter) 시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의 별세, 그리고 존 볼턴의 회고록 출간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 코로나19 감염
지난달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다. 하루 수만 명의 미국인을 감염시키며 위세를 떨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드디어 백악관도 무너뜨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장 트위터를 통해 “상태가 괜찮다”며 지지자들을 안심시켰지만 미국은 지도자이자 공화당 대선 주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했다. 특히 올해 74세로 고령 ‘중증 위험군’에 속하는 트럼프가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미 언론들은 혹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투병 과정에서 유고하게 된다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폭동과 소요 사태 등 대규모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우려와 달리 트럼프는 월터 리드 군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 경호원과 함께 차량에 탑승해 ‘깜짝 유세’를 벌이는 등 건강에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일주일여 만에 백악관으로 복귀해 현장 유세를 다니며 선거 활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감염은 그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더 부각시켰다는 평가다. 바이러스 확산 초기부터 트럼프는 코로나19를 독감에 비유하며 과소평가했고 방역보다는 경제활동을 중요시하며 록다운 등 조치에 반대해왔다.

AP통신이 전국 유권자 13만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60%는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40%는 현재 미국의 가장 큰 문제로 코로나19를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경시해온 코로나19가 그의 재선 가도에서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1·2차 대선후보 TV토론
두 차례에 걸쳐 생방송된 대선 TV토론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의 토론 모두 바이든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9월 29일 진행된 TV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후보는 거친 발언을 주고받으며 난타전을 벌였다. 두 후보는 실업률과 기후 문제, 우편투표 미비 문제 등의 주제와 바이든 후보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비리 의혹 등을 둘러싸고 격돌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의 발언 도중 시시때때로 끼어들며 진행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참다못한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제발 그 입을 닥칠 수는 없겠나(Will you shut up man)”라고 응수하며 충돌하기도 했다. 미 언론들은 이번 토론을 ‘진흙탕 싸움’으로 묘사하며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다만 토론을 지켜본 미국 시민들은 바이든에게 판정승을 내린 모양새다. 미 CBS방송과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토론 직후 10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8%는 바이든이 TV토론을 이겼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답한 사람은 41%, 비겼다고 답한 사람은 10%였다.

다른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60%가 바이든의 손을 들어줬다. 2차 토론에서는 양 후보가 서로의 발언 도중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으나 각 후보의 호감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CNN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차 토론 역시 53%의 응답자가 바이든 후보가 이겼다고 답했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과 BLM 시위
지난 5월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에 목을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미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곳곳에서 시위대가 일어나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M·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며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 철폐를 외쳤다.

이 같은 현상은 흑인 등 유색인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바이든 후보에게 크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같은 기간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 시위를 ‘폭도(thugs)’라고 지칭하며 연방군까지 투입할 방침을 내세워 큰 반발을 샀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이 같은 점을 의식해 미국 최초 흑인 지도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해왔다. 러닝메이트이자 부통령 후보로는 흑인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내세우며 흑인 유권자의 표심을 끌어안았다.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3일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의 바이든 지지율은 87%에 육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찍은 흑인은 12%에 불과했다. 반면 백인 유권자의 각 후보 지지율은 트럼프 49%, 바이든 48%로 큰 차이가 없었다. 흑인 유권자의 표심이 대선 결과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된 셈이다.

특히 위스콘신주와 미시간주에서 개표 초기 트럼프에 뒤지던 바이든 후보는 밀위키와 디트로이트 지역의 개표가 이뤄진 뒤 역전했다. 두 지역은 흑인 유권자가 집중된 지역으로, 이들의 표가 바이든 역전의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진보의 아이콘’ 긴즈버그 별세
지난 9월 18일,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이 8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추모의 물결과 함께 미국에선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누가 지명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누가 새 대법관이 되느냐에 따라 보수 성향 5명과 진보 성향 4명으로 구성돼있던 연방대법원의 이념 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이미 코니 배럿 당시 제7연방순회항소법원 판사를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배럿은 낙태 허용과 오바마케어 등 이슈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는 등 보수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결과에 불복할 것임을 시사하며 연방대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트럼프로서는 대법원의 보수화에 성공한 것이 큰 성과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절차적인 문제가 확인돼 대선 승자가 대법원의 손에 가려지는 상황이 온다면 법원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초 예상과 달리 트럼프의 개표 중단 소송이 각지에서 기각되며 배럿 대법관의 인준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미 기각된 소송에 대한 심리는 다시 이뤄질 수 없다”며 “또 대법원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대선에 깊이 관여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존 볼턴 회고록 출간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출간되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볼턴은 그가 지난 6월23일 출간한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에서 트럼프의 부진한 대북 외교성과 등을 언급하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미국 정부의 북·미 비핵화 외교는 한국의 창조물”이라며 “미국의 전략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6월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낚였다(hooked)”고 주장했다. 정상회담 성사를 이끌어낸 것은 트럼프가 아닌 문재인 대통령이며 회담의 주도권 역시 김정은 위원장이 쥐었다는 뉘앙스다.

볼턴은 이에 더해 “트럼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비공개 회동에서 올해 재선에서 자신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임기 후반부 들어 ‘중국 때리기’에 몰두하며 반중 정책을 일삼아온 트럼프에게는 치명타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향해 “멍청하기 짝이 없다” “진작 해임했어야 했던 정신병자” 등 막말과 폭언을 날리고 회고록 출간을 막기 위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지만 결국 회고록의 출간을 막지는 못했다. WSJ는 “볼턴의 회고록은 미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이런 일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트럼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