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죽일 권리가 있다, 200명은…” 살인마의 일기장

입력 2020-11-06 16:17
게티이미지뱅크

“내게는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다 죽여버릴 권리가 있다. 닥치는 대로 죽이겠지만 기본적으로 100명 내지 200명은 죽여야 한다.”

강원도 인제에서 발생한 ‘등산객 묻지마 살해’ 사건 범인인 23살 이모씨의 일기장에는 끔찍한 살인 계획이 적혀있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개심과 극단적인 표현들이 가득했고, 법원은 이 일기장을 양형 이유로 들며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은 춘천지법 형사2부(진원두 부장판사) 심리로 6일 오전 10시쯤 진행됐다. 이씨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등장했다. 얼굴 절반이 가려져 있었지만 매우 담담한 표정이었고 변화는 없었다. 보통의 피고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고개를 푹 숙이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는 지난 7월 11일 인제군 북면 한 등산로 입구에서 처음 만난 여성 한모씨(58)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한씨는 버섯을 채취하러 왔다가 차에서 쉬던 중 목숨을 잃었다. 일면식 없는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왜 그토록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는지 그 동기는 이날 판사가 읽어나간 이씨의 일기장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씨는 “인간은 절대 교화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살아서는 안 된다. 난 너희가 싫고 언제나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100명 내지 200명은 죽여야 한다”고 썼다. 살해 의지와 계획이 드러난 글이었다. 또 스스로 고안한 살인 장치와 사람을 죽이는 장면, 군대 동기의 장기를 도구로 빼내는 장면 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것들을 상세하게 그려놓기도 했다.

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등학교 3학년~대학교 1학년 무렵에는 실제로 살해 대상을 물색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에도 살인 방법과 시기 등을 구체적으로 구상했고 인터넷에서 영상을 찾아보며 살해 욕구를 해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이번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뒤 재판부에 딱 한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게 아닌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과 부모를 탓하는 내용을 담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최소한의 죄책감, 반성의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반성문을 통해 다소 자기연민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느꼈을 고통과 공포의 깊이를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며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다소 불우했더라도 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범행 동기와 경위, 수단과 결과, 유족들의 엄벌 탄원 등을 종합하면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법정을 찾은 한씨의 여동생은 판결을 들은 뒤 “사형을 바라기는 했으나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니 무기징역도 받아들이겠다”며 “그래도 우리 마음에서는 사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범인은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사과의 말조차 안 했다. 너무 억울하고 언니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