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본관 점거 시위 학생에 ‘명예실추’ 5000만원 손배소

입력 2020-11-05 20:09
2017년 3월 11일 서울대 시흥캠퍼스 반대 행정관 점거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대포가 살수되는 모습. 서울대 대학신문 제공

서울대학교가 시흥캠퍼스 사업 추진에 반대하며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에게 ‘학교 명예실추’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의 집회 해산 행위를 ‘신체의 자유 침해’로 판단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결정문이 공개된 상황에서 학교의 이번 대응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대 총학생회 직무대행 2020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연석회의) 등은 5일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학교가 자행한 인권 침해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인권위 결정을 기초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피해 학생 9명에게 배상금 5000만원을 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에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한 데 대한 학교 측의 맞소송이다.

학교 측은 “시흥캠퍼스 추진에 반대해 학교 점거 농성에 참여한 학생들은 불법행위를 자행한 것이나 다름 없다”며 “(이런 행위로) 학교에 재산적 손해를 가하고 명예를 훼손시켰으니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연석회의 측은 “학교는 학생들에게 폭력진압 행위를 가하고 무기정학 등 중징계를 내리는 등 이미 수년간 고통을 입힌 것도 모자라 학생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추가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권위 권고에 정면으로 반(反)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세정 총장은 적반하장 보복소송을 즉각 취하하고, 피해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배상을 요구한 원고 9명 만을 콕 집어 학교 측이 반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형적인 ‘괴롭힘 소송’으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것이 연석회의 측의 설명이다.

학교와 학생들 간 갈등은 2017년 서울대의 시흥캠퍼스 추진 사업에서 비롯됐다. 학생들은 같은 해 3월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요구하면서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분말 소화기를 뿌렸고, 대학 교직원 400여명은 소화전 호스로 물대포를 살수하면서 학생들의 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후 학생들은 학교의 행위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지난 6월 결정문에서 “학생들 점거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대학 교직원들이 학생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서울대 총장에게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등 본부 주요 보직자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과 향후 학내에서 점거를 포함한 집회·시위를 하는 경우 그 대응에 있어서 보다 인권 친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연석회의 측은 “학내단체, 시민·사회단체, 인권단체 등과 함께 규탄 기자회견을 추진하는 등 학교의 보복소송 철회와 피해 학생 방어를 위한 운동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