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고용 안정과 인구 문제 해결 등을 지원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은법에 명시된 설립 목적의 양대 축은 물가와 금융안정이다. 여기에 고용안정을 추가하자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흐르고 있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기조 속에서 실물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한은의 역할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한은으로서는 큰 고민거리가 생긴 셈이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지난 3일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한은법 1조에 한국은행의 설립 목표로 명시된 ‘금융안정’ 문구를 ‘금융 및 고용의 안정과 인구구조의 균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박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에 대해 “고용시장의 불안, 청년실업의 증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고용 및 인구문제의 해결 등을 위한 한은의 정책적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같은 당 김경협 의원도 지난달 말 한은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포함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도 관련 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여야를 아우르는 정치권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은은 물가·금융 안정에 이어 고용 안정이라는 3대 목표를 갖게 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영국 영란은행(BOE), 호주중앙은행(RBA) 등 해외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통화정책 목표에 고용을 명시하고 있다. 미 연준은 설립 목표로 최대 고용, 물가 안정, 적정한 장기금리 등 3가지를 두고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코로나19 사태로 통화 정책의 무게중심이 고용 안정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를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정안 취지에 공감하는 편이다. 글로벌 중앙은행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제약을 우려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경우, 미국 등과 달리 고용 시장의 경직성이 심하고 고용 구조가 복잡하다”며 “실제 고용 상황을 파악하고 안정 정책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