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뎅∼, 전국∼∼∼노래자랑!”
송해씨의 구수한 진행으로 대한민국 서민들의 일요일을 책임졌던 TV 오락물 KBS 전국노래자랑이 어느새 40년을 훌쩍 넘겼다. 이 최장수 프로그램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주로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 같은 프로그램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이 방송을 어느새 자신도 좋아하게 되면서 15년째 KBS 전국노래자랑 현장을 추적하며 출연자들을 담아온 변순철(52) 작가가 그간의 결과물을 총정리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하는 ‘바람아 불어라 변순철 전국노래자랑’전이다.
인물을 주로 담아와 3대 초상작가로 꼽히는 그가 이 국민적 오락 방송에 어느 날 주목하게 된 것은 뿜어져 나오는 대중적 에너지에 반해서다.
지역 특산품인 나주 배 포장 용기를 장식인양 조끼에 매단 채 나온 여성 출연자, 태극 마크가 그려진 전자 기타를 멘 얼룩무늬 군복 차림의 여군, 초록색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나온 중년 남자, 이날만은 교단의 무게를 벗어던진 학교 선생님, 걸그룹을 따라 춤추는 여고생들, 베레모와 체크무늬 셔츠를 단체복처럼 입고 지르박을 추듯 자세를 취한 초로의 남성들….
과장된 몸짓, 미숙함,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날만은 나훈아가 부럽지 않은 무대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출연자들. 반짝이 옷과 나비넥타이로 표상되는 조야한 무대 의상이 어우러져 전염성 강한 긍정성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곳은 대중의 해방구다.
출연자만 찍던 변 작가는 응원하러 온 친구들까지 함께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진행자와 출연자, 현장의 관객뿐 아니라 안방의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전국노래자랑을 완성하는 초상들이기 때문이다.
전국노래자랑을 찍더라도 그간 인물에 집중했던 작가는 이번에는 피사체를 와이드숏으로 잡아 풍경으로서의 전국노래자랑을 찍는다. 우중에도 운집한 관중을 개미처럼 작게 잡아낸 전경 사진은 개별 출연자 사진 못지않게 서민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사실 무대가 설치된 주변의 풍경은 보잘것없다. 남루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주변 풍경이야말로 이 오락 무대가 서민들에게 어떤 위로와 기쁨으로 다가가는지를 웅변해준다.
수원 화성을 배경 삼아 무대가 꾸려졌던 수원 편에서 ‘수원 양념갈비 협의회’라고 적힌 응원 플래카드가 보이고 울릉도 편에서는 육지를 오가는 페리도 잡혔다. 그렇게 한 시대의 사회적 풍경이 무대 주변에 펼쳐진다.
작가는 “저는 대중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그들이 반영하고 있는 사회의 단면, 풍속, 심리적 코드, 시대의 정서를 읽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전국노래자랑을 주제로 한 전시는 두 번째다. 2014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전국노래자랑’ 전을 하고도 다시 5년 넘게 전국의 방송 촬영 현장을 따라갔다. 그는 “대한민국 초상의 원형을 정리하고 싶었다. 노래를 수집하듯 전국의 초상을 수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뒤늦게 미국 유학을 하며 사진작가의 길을 들어섰다. 처음 피사체에 담은 인물은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뉴욕’ ‘짝패’ 연작이었다. 무표정했던 과거의 초상사진과 달리 전국노래자랑의 주인공들은 표정과 액션이 넘친다. 작가의 표현대로 ‘날 것 그대로의 대한민국의 표정’이 여기에 있다. 12월 6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