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운전에 6살 동생 잃은 9살 형 “혼자 살아 미안”

입력 2020-11-05 14:21 수정 2020-11-05 14:31
음주운전 사망사고 유족 측 "엄벌해달라". 연합

대낮에 음주운전을 해 6세 아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에 참석한 피해 유족들은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단독 권경선 판사는 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위험운전치사·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58)씨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김씨는 지난 9월 6일 오후 3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에서 술을 마시고 승용차를 몰다 인도에 있던 오토바이와 가로등을 들이받았고, 가로등이 쓰러지면서 주변에 있던 이모(6)군을 덮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4%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재판에서 김씨는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그는 고개 숙인 채 재판에 임하다가 유족 측 발언 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씨는 재판을 마치고 들어가면서 유가족을 향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유가족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재판 과정에서 증거 조사를 위해 사고 당일 차량 블랙박스와 CCTV 영상이 재생됐다. 차량이 가로등을 들이받는 영상이 나오자 재판에 참석한 유족들은 “거짓말이야”라며 오열했다.

당시 사망한 아이 주변에는 아홉 살짜리 형도 같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판에 참석한 아버지 이모씨는 “첫째 아이(형)가 무기징역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고, 동생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있다”며 “갑작스러운 이별로 첫째 아이와 가족의 삶과 모두 상상할 수 없는 비극에 처해졌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첫째가 원하는 판결은 다시는 동생과 함께할 수 없는 만큼 가해자를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며 울먹였다.

이어 “무거운 처벌이 나오지 않는다면 음주사고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검찰 구형보다 강력한 처벌을 내려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 달라”고 했다.

이날 공판은 김씨 측이 피해 유가족 측에 용서와 합의를 구할 시간을 요청하면서 다음 기일로 미뤄졌다.

재판을 마친 뒤 유족들은 취재진 앞에서 “첫째 아이가 최근 엄마에게 ‘나만 피하고 동생을 못 지켜줘서 미안해’라고 자책을 했다”며 “첫째 아이가 평생을 죄책감을 가지고 살게 해선 안 된다”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다음 공판은 다음 달 3일 진행될 예정이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