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이 넘는 아들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노모에게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왜소한 노모가 거구의 아들을 목 졸라 살해했다는 자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표극창)는 3일 술을 자주 마시는 문제로 갈등을 빚다 102㎏의 50대 아들을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A씨(76)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노모인 A씨는 지난 4월 21일 0시30분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딸 B씨의 집에서 함께 살던 아들 C씨(50)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때린 뒤 수건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모자는 약 8년 전부터 딸 B씨 집에 들어와 함께 생활해 왔다. 숨진 C씨는 지난해 4~6월 사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지낸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사건 당일인 0시53분에 “아들이 술을 마시고 속을 썩여 목을 졸랐더니 숨진 것 같다”며 112에 신고했다. A씨는 “아들이 약 1년 전 일을 그만두고 술을 많이 마셔 괴로웠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까 걱정돼 살해할 마음을 먹었다”고 진술했다. A씨는 또 재판 중 최후진술에서 “(아들이) 희망도 없고 하는 꼴이 너무 불쌍해서, 술만 마시면 쭈그리고 앉아서 제정신이 없고, 불쌍해서 그랬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의 살인을 인정할 만한 증거는 그의 자백과 딸의 진술뿐”이라며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자백했더라도 법원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때만 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삼아야 한다”고 전제했다. “살해 경위 등을 보면 범행 동기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한 재판부는 “제3자가 사건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피고인이 가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허위 진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피고인인 노모와 그의 딸의 진술을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고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로 봤다. 이후 재판부는 구체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가로 40㎝, 세로 75㎝ 크기의 수건으로 고령인 A씨가 키 173.5㎝, 몸무게 102㎏인 피해자 목을 졸라 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첫 번째다. 당시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더라도 반항 못할 정도의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 부검 감정 결과 피해자 C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2%였다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사무실에서 여성 실무관에게 수건으로 목을 조여보라고 했는데 피가 안 통하긴 했지만 아무리 해도 숨은 쉬어졌고 불편한 정도였다”고 했다. “피해자의 여동생이자 노모의 딸인 B씨가 사건 발생 전날 밤 귀가해 오빠와 다퉜는데 말싸움을 시작한 이후 상황을 논리적으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한 재판부는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오빠가 양심이 있다면 죽고 싶어 가만히 있지 않았을까’라고 한 말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5분 만에 경찰이 출동했을 때 집이 말끔히 정돈된 상황에 대해서도 의심했다. “피고인이 청소할 정신적인 여유나 필요성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 재판부는 “112 신고 후 가만히 있었다는 피고인의 진술도 진실성에 강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당시 A씨는 112에 신고하면서 2분간 통화했고 경찰이 5분 뒤에 현장에 도착했다. 청소할 시간은 3분에 불과했다. 그동안 A씨는 딸 B씨와 통화하고 경찰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재판부는 A씨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쓸 가능성을 제기했다. 때문에 재판부는 범행 당시 집 안에 같이 있다가 밖으로 나간 딸 B씨를 불러 재차 심리하기도 했다. 무죄가 선고된 직후 노모 A씨와 딸 B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A씨에게 20년을 구형한 검찰은 “기록과 판결문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