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각 반려’ 소식에도 홍남기 “못 들었다…후임자 올 때까지”

입력 2020-11-04 05:17 수정 2020-11-04 09:50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요건’을 둘러싼 논란에 책임을 지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혀 이목을 끌고 있다. 청와대는 곧바로 “문 대통령이 사의를 바로 반려한 뒤 홍 부총리를 재신임했다”고 밝혔지만 홍 부총리는 “국회에 오느라 반려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후임자를 거론하며 에둘러 사퇴 의사를 밝혔다.

홍 부총리는 3일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나는 대주주 요견 유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은 현행처럼 10억원으로 유지됐다”며 “2개월 동안 갑론을박한 것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싶어 현행대로 가는 것에 책임을 지고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식 양도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내년부터 ‘종목당 3억원(현행 10억원) 보유’로 강화하려 했지만 최근 여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홍 부총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는 뜻이다. 그는 “다만 사의 표명은 했지만 내일부터 국회 예결위원회가 있는데 예산 심의에 대해서는 주무 장관으로서 심의에 최대한 열정을 가지고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홍 부총리의 깜짝 고백에 청와대는 곧바로 반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출입 기자들에게 “홍 부총리는 오늘 국무회의 직후 대통령께 사의를 표했지만 대통령은 바로 반려 후 재신임했다”고 공지했다.

문 대통령이 “직으로 책임질 일이 아니다”며 바로 반려했다는 설명이지만 정작 홍 부총리는 사의를 염두해 둔 발언을 이어가며 에둘러 사퇴 의사를 재차 밝혔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대통령이 사직서를 반려했다는 소식도 들었느냐”고 물었고 홍 부총리는 “아니다. 국회에 오느라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양 의원은 “문 대통령이 반려했다고 보도되고 있는데 계속 부총리를 수행할 것이냐”고 거듭 질문했고 홍 부총리는 “나는 사의 표명을 했다. 후임자가 지명되면 후임자가 청문회를 거쳐 올 때까지는 물러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게 예산안이든, 정책이든 끝까지 물러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공직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여당에선 홍 부총리의 공개 사의 표명에 “무책임하다”는 질타가 쏟아졌지만 홍 부총리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사직서 전달 경위에 대한 혼선도 불거졌다. 문 대통령이 재신임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양측 소통의 불협화음이 있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홍 부총리는 기자들에게 “타이핑을 쳐서 전달했다. 인편으로 전달했다”고 뒤늦게 설명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에 이어 문재인정부 두 번째 경제 사령탑으로 발탁된 홍 부총리는 1년11개월을 재직하면서 ‘역대 두 번째로 장수한 경제 사령탑’ 타이틀을 얻었지만 역대 가장 무력한 경제 사령탑이라는 비판도 피하지 못했다. 홍 부총리는 주요 현안에서 정치인 출신 장관에게 밀렸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올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당정은 지난 3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규모, 4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부터 최근 부동산 재산세 감면 논의까지 거듭 이견을 보였다. 지난 3월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러나라고 할 수도 있다”며 질타하자 홍 부총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결국 추경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총액은 유지하면서 사실상 2조원 넘게 증액됐다.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간 갈등에서도 홍 부총리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당초 홍 부총리는 ‘전체 가구의 50%만 지급하자’는 입장이었고 여당은 ‘70%’를 주장했었다.

당정은 70%로 합의를 봤지만 여당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100% 전 가구에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홍 부총리는 ‘더 어려울 때를 대비해 재정 여력을 비축해야 한다’고 맞섰지만 결국 청와대가 여당의 손을 들어주면서 100% 지급으로 결정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감안해 기재부 안팎에선 해묵은 갈등이 결국 터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홧김에 사표를 던져 본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사퇴 결심을 굳혔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