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사이트인 배드파더스·배드페어런츠 2곳의 운영자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연달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여론의 관심은 성범죄자 추정 인물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의 향후 법적 처분으로 쏠리고 있다. 디지털교도소 역시 같은 신상공개 사이트인 만큼 무죄 판결 가능성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배드파더스·배드페어런츠 판례가 디지털교도소 판결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디지털교도소는 공익 추구보다는 특정인을 비방하려는 쪽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앞선 두 사이트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배드페어런츠 운영자인 강모(47)씨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지난달 29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강씨가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문과 피해자의 고충 등을 일일이 확인했던 점 등을 들어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난 1월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모(57)씨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배드파더스의 공익적 역할에 주목하며 “피고인의 활동은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법원은 강씨의 경우 일부 허위사실을 알린 정황이 인정되기는 했지만 고의성이 없었고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구씨는 허위가 아닌 사실 그대로를 공론화함으로써 공익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이 인정돼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배드파더스·배드페어런츠의 판결은 디지털교도소와는 별개의 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일부 허위사실을 유포한 디지털교도소는 이미 ‘공익실현’이라는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실제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한 대학 교수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다 경찰 수사를 통해 성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성범죄자로 지목돼 결백을 주장하던 한 대학생이 피해를 호소하다 사망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부지석 법무법인 세림 변호사는 3일 “공익 목적이 인정되려면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개인 생각이 지나치게 개입되다 보니 객관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본인이 특정인을 처벌하겠다고 나선 것도 문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드페어런츠는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공론화를 목적에 두고 양육비 문제를 여론에 호소하는 수준이었던 반면 디지털교도소는 권한도 없으면서 특정인을 직접 ‘단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증거를 찾기 힘든 성범죄 특성상 디지털교도소는 운영 방식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 배드파더스·배드페어런츠는 양육비 관련 조서 등 증빙 서류를 구하기가 쉬웠지만 디지털교도소는 대부분 제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손지원 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는 “디지털교도소는 민감한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며 “‘성범죄자 알림e’ 정보를 무단으로 가져와 게재한 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