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만요, 당신에게 딱 맞는 옷은요…패션업계의 AI 실험

입력 2020-11-04 00:06
데몬즈가 치타와 협업해 출시한 플리스 다운. 롯데온 제공

개인의 가치관과 스타일을 담은 옷을 1초에 몇 개까지 디자인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디자이너는 1초에 최대 1만개의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 기술이 패션업계에 접목되며 스타일 추천, 수요 예측 등에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가운데 AI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등장하며 새로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온은 3일 AI를 활용해 의류를 기획 및 제작, 유통하는 신규 프로젝트 브랜드 ‘de MonZ’(데몬즈)를 론칭했다. AI 활용 디자인 전문 스타트업 ‘디자이노블’이 디자인을 맡고 스타트업 ‘콤마’가 생산을, 롯데온은 유통을 맡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데몬즈는 첫 뮤즈로 힙합 아티스트 치타를 선정하고 그가 기르는 반려묘, 환경, 변화된 본인의 모습 등이 담긴 이미지를 토대로 AI가 디자인한 스트리트 패션을 만들었다. 이렇게 제작된 8종의 상품은 선(先)주문 후(後)생산의 ‘주문생산방식’으로 제작·유통해 불필요한 의류 생산을 줄이기로 했다.

AI가 디자인부터 제작, 유통까지 모두 관여했다는 점에서 롯데온의 시도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패션업계에서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철학과 가치관, 섬세한 감각 등이 반영된 인간의 영역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또 제작과 유통 각 단계에 AI가 활용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어도 데몬즈와 같은 경우는 국내엔 없었던 새로운 패션 유통 방식이다. 롯데온 관계자는 “추후엔 사진 한 장으로 AI 디자이너가 만들어 주는 ‘나만의 디자인’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플랫폼화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섬의 영캐주얼 브랜드 SJYP가 AI 활용 디자인 전문 스타트업 ‘디자이노블’과 협업해 2018년 말 선보인 '디노 후드티'. 한섬 제공

물론 AI 디자이너의 상품이 판매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 전문기업 한섬의 영캐주얼 브랜드 ‘SJYP’가 디자이노블과 협업해 출시한 ‘디노 후드티’가 먼저였다. 한섬 관계자는 “당시 이례적인 시도였어서 그런지 해당 컬렉션은 출시 후 완판됐었다”고 전했다. 다만 실험적 차원에서 이뤄졌던 것이라 현재는 진행 중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AI가 디자인한 상품이 출시되는 건 여전히 업계에서 생소한 시도지만 다른 기능에서의 AI 활용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패션 스타트업에서 활발하다. 패션 쇼핑 애플리케이션 ‘브랜디’는 AI 수요 예측 알고리즘을 활용한 선매입으로 당일 발송이 가능한 ‘오늘출발’ 서비스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며 빠르게 성장했다. 무신사, 지그재그 등도 AI 도입으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도 투자했다. LF는 지난해 패션 AI 스타트업 ‘옴니어스’에 소규모 지분 투자를 진행했고, LF몰 내에서 비슷한 상품 추천 등 일부 기능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국내 패션 분야에선 AI가 일부 기능에만 활용되고 있지만 해외에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스티치 픽스’다. 고객이 신체정보, 좋아하는 브랜드 등 기본 데이터를 입력하면 AI 알고리즘과 인간 코디네이터가 협업해 고객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과 액세서리를 선별해 배송해준다. 알리바바도 2018년 홍콩에 ‘패션 AI 스토어’ 매장을 열고 고객이 스마트 거울 앞에 서면 AI가 고객의 스타일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패션업계는 AI 기술이 국내에서도 향후 추천 기능뿐 아니라 스티치 픽스와 같은 맞춤형 큐레이션에도 활용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다만 유명인의 스타일링이나 SNS 등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소비자 특성상 스티치 픽스와 같은 시스템이 국내에 자리 잡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 내다봤다. 업계 한 관계자는 “궁극적으로는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으로 갈 것이라 본다”면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큰 내수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국내 패션 내수시장이 작다는 점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